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난 7월 초 정부는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 고착화와 사회이동성 약화'라는 당면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역동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며, 이를 위한 실천과제들을 이 로드맵은 담고 있다. 필자는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하며, 실제로 수년 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의 산업 역동성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해당 연구에서는 산업구조 변화 속도를 역동성 변수로 삼아 여러 국가들을 분석했는데 우리나라의 산업 역동성이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측정됐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성숙기에 들어서면 역동성은 저하된다. 즉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당 소득이 높을수록 역동성은 낮아지는 반비례 관계가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미국, 독일 등에 비해서도 역동성 저하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연구에서는 역동성 저하 속도가 빠를수록 잠재성장률도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주요국 대비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는 로드맵의 진단과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정부 로드맵에서는 다양한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다소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여러 분야의 문제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역동성 회복을 위한 단 하나의 과제만 선택해야 한다면 필자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꼽겠다. 필자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중소기업의 낮은 경쟁력을 꼽아 왔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우리나라가 특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 전체 기업 수의 99% 이상을,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경제 전체의 역동성과 사회이동성을 좌우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 종사자의 임금도 높아져야 경제의 역동성이 제고되고 사회이동성도 활발해진다. 또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 종사자가 중소기업 종사자에 비해 초혼연령도 낮고 출산율도 높다.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다면 출산율 제고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는 어느 정부에서든 중요한 정책과제로 삼아 왔다. 하지만 뚜렷한 정책성과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그 주요 원인으로 상당수의 중소기업 정책이 기업복지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기업복지는 인센티브를 왜곡시켜 소위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한다. 중소기업의 테두리를 벗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지원은 없어지고 다양한 규제가 뒤따른다. 즉 성장에 대한 페널티를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리 많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동원되어도 인센티브 구조가 이같이 반(反)성장적이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필자는 그동안 '중소기업 졸업보상제'를 제안해왔다. 중소기업이 성장하여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면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이 같은 보상체계야말로 중소기업에 안주하고자 하는 역(逆)인센티브를 약화시키고, 경제역동성과 사회이동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센티브 구조이다.
경제의 역동성 회복은 기업 성장사다리가 잘 작동하게 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성장사다리가 있어도 이를 타고 올라가려는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이 없으면 그 사다리는 무용지물이다. 기업의 성장인센티브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역동경제 로드맵'에 더 많이 담겼으면 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