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천 산업부장
#. 한국 양궁을 이쯤이면 '신궁(神弓)'의 경지로 불러도 될 듯싶다. 파리올림픽에서 4일 현재, 4종목 금메달을 휩쓸었다. 남은 남자 개인전마저 휩쓸면 전 종목 석권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업을 이룬다. 각 종목마다 맘을 졸여야 하는 접전들이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한국의 승리였다. 직전 경기까지 펄펄 날던 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만 만나면 하나같이 맥을 못 췄다. 마치 중국 축구가 겪었던 '공한증'이 경기마다 반복됐다.
단연 여자 단체전이 압권이었다. 남수현·전훈영·임시현으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단체전 10연패의 신화를 일궜다. 88올림픽부터 무려 40년간 왕좌를 지켰다. 올림픽 역사상 10연패는 미국 남자 수영 대표팀의 400m 혼계영뿐이었다.
외신 기자들은 한국 양궁의 비결을 캐물었다. 남자 대표팀 맏형 김우진은 명쾌하게 답했다. "한국 양궁은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실업까지 모든 선수가 체계적으로 양궁을 한다"고 했다. 아울러 양궁협회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깊은 관심과 지원도 빼놓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현대차가 양궁을 지원한 기간도 40년이다.
경쟁을 펼친 미국의 양궁 선수 브레이디 엘리슨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5년간 신궁을 키워내는 한국의 양궁 시스템을 부러워했다. 르몽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한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양궁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친 걸 기원으로 분석했다. 한마디로 선수의 재능과 전문적인 육성 시스템, 기업의 적극적 후원, 정부의 의지라는 4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또 있을까. '원팀'은 바로 이런 거다.
#. 삼성전자 반도체 '구원투수'인 전영현 부회장이 최근 쇄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쇄신의 대상은 조직문화다. 반도체 영업이익 6조원대를 회복한 시점에 생뚱맞을 일이다. 하지만 사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 부회장은 "2분기 실적개선은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5월 반도체 수장 취임 후 두달여 만에 큰 폭의 실적개선을 이뤘지만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평가 이후 대책이 더 와닿았다. "근원적 경쟁력 회복 없이 시황에 의존하면 작년 같은 상황(대규모 적자)은 되풀이될 것"이라는 대목이다.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문화를 재건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한편으론 사상 초유의 '삼성전자 총파업'을 강행한 노조에도 던진 메시지일 것이다. 파운드리는 TSMC,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밀리는 '2등 삼성전자'의 굴욕을 벗어나려면 노조의 대승적 협조가 절대적이다. 다행히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한달간의 총파업을 풀었다. 조합원 차등 임금인상 등 무리한 요구는 수포로 돌아갔다. 막판 파업 기간 노조원들의 임금손실을 보상해 달라는 것도 협상력이 떨어졌다. 삼성전자가 이를 수용하면 또 다른 논란과 역차별만 낳을 뿐이다. 이제는 노조도 일터를 떠나지 말고 전 부회장이 말한 '치열한 토론'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4년 하반기 산업 기상도 전망 조사'를 보면 반도체 산업만 '맑음'(매우 좋음)이다. 대한상의는 올해 하반기 반도체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17.7% 성장한 652억달러(약 90조6900억원), 연간 기준으로는 29.8% 성장한 1280억달러(약 178조원) 수준을 예상했다. 반면 수출역군인 철강, 석유화학, 건설 분야는 여전히 '흐림'(어려움)이다. 그런데 자동차, 조선, 2차전지 등 주력 수출업종을 '대체로 맑음'(좋음)으로 전망했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호황 업종 모두 파업이나 노조 리스크가 도사린다. 이들 업종은 노조가 이미 파업권을 확보했다.
언제든지 생산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발 경기침체론이 고개 드는 상황에서 우려가 더 크다. 파업이 아닌 '원팀'을 위한 노사 간 뜨거운 대화가 절실한 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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