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마켓 신화 일군 구영배
대격변 유통시장 못 읽고
꼼수와 반칙 무얼 노렸나
최진숙 논설위원
미국의 제프 베이조스가 세상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에서 팔겠다는 포부로 아마존 문을 연 때가 1994년이다.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도 그해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신시장이 우리에게 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다. 데이콤의 사내벤처 인터파크와 롯데인터넷백화점에서 K이커머스는 시작된다. 그때 직원들은 이메일로 주문을 받고 계좌에서 입금을 확인한 뒤 직접 상품을 상자에 담아 송장에 주소를 써서 발송했다. 이 정도 프로세스가 당시로선 유통혁명에 해당됐다.
유통의 진화는 통신환경의 기술적 진보와 궤를 같이한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곳곳에 깔리면서 이베이 경매 사이트를 모방한 옥션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후 옥션 천하를 흔들고 새 길을 낸 곳이 국내 첫 오픈마켓인 G마켓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제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중개인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출현한 것인데 당시엔 생경한 개념이었다. 이를 개척한 이가 다름 아닌 지금의 큐텐 대표 구영배다.
그의 G마켓 기적은 한국 유통사에 길이 남는다. 서울대 자원공학과 85학번으로 미국계 석유개발 기술회사 슐럼버거에서 일하다 2000년 인터파크에 인연이 닿은 것이 시작이다. 3년 후 인터파크 자회사 G마켓을 출범시키고 이듬해 매월 200% 매출 성장 기록을 냈다. 폭발적인 성장은 2006년 나스닥 상장으로 이어진다. 구 대표 신화의 정점이 여기였다. 그는 구 대리로 불렸을 만큼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로부터 G마켓을 사들인 이베이가 10년 한국영업 금지 조건을 내걸자 싱가포르에서 동남아 시장을 겨냥해 설립한 회사가 큐텐이다.
국내는 바야흐로 소셜커머스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고객들은 백화점식 상품이 모여 있는 오픈마켓보다 정말 필요한 상품을 흥미롭게 파는 소셜커머스에 더 끌렸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고 일정 수준 이상 구매자가 모이면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는 곳이 소셜커머스였다. 수백개 업체가 난립했고 살아남은 곳이 2010년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쿠팡, 티몬, 위메프 3인방이다.
격렬한 3파전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됐는지 다들 안다. 처음부터 미국 상장을 노린 하버드 중퇴생 김범석의 쿠팡 도전기는 G마켓 신화를 능가한다. 기저귀를 팔다 망할 회사라는 비아냥에도 자체 물류센터를 지어 새벽배송, 당일배송 신세계를 열었다. 순식간에 압도적인 시장 지위에 올랐다. 쿠팡의 성공을 배송혁명에서 찾는 이들이 많지만 정작 내부에선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유통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술진에 공을 돌린다.
시장은 어느새 쿠팡의 독주 속에 알리, 테무 등 중국 유통 공룡의 공습으로 새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구영배 대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10년 족쇄가 풀리면서 국내로 발을 디딜 때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동남아를 기반으로 한국 상품의 글로벌 길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구 대표가 티몬, 위메프, 위시 등을 잇달아 인수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행보로 봤을 것이다.
구 대표는 시장의 예상과 다르게 갔다. 낙오된 부실한 이커머스 기업만 고른 이유가 현금 없이 지분교환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을 사들여 가장 먼저 한 일이 판매자 대금 정산 시기 연장이었다. 고객 돈을 무이자로 쓰고 자금 돌려막기 창구로 활용했다. 무리한 할인과 영업으로 거래 사이즈만 키우고 물량은 큐텐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로 몰아줬다는 의심도 받는다. 결국 최종 목적지는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상장이라는 것인데 수상한 티몬 영업에 결제대행사가 자금 흐름을 막으면서 구 대표 실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영세 판매자들의 티메프 피해액만 1조원이 넘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책만 내놨던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구 대표는 6개월 시간을 주면 모든 것을 정상화하겠다고 호소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나.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벤처 영웅은 있을 곳이 없다. 꼼수와 반칙을 막을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jins@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