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먹고사는 일 우선
‘탄핵 중독증’ 못끊는 거야
민생이 여야 승패 가를 것
구본영 논설고문
올여름은 유례없이 후텁지근하다. 그래도 열대야에 지친 국민들에게 파리올림픽에서 태극전사들의 승전보가 청량제였다. 반면 정쟁으로 날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여의도 정치판이 이를 지켜본 관객의 체감온도를 올린 주범이었을 법하다.
개원식도 없이 문을 연 제22대 국회의 생산성은 지금까지 사실상 제로(0)다. 국회는 단 한 건의 민생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거대 야당이 발의한 7건의 탄핵안과 9건의 특검법을 놓고 싸우느라 합의할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8월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 등 쟁점법안 6건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긴 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거부권)로 폐기된 법안이 거의 다였다. 이를 재발의해 통과시키긴 했지만, 다시 거부권 허들을 넘지 못할 게 뻔하다. 8월 임시국회가 거야의 법안 일방 처리→여당의 필리버스터→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결로 법안 폐기라는 도돌이표에서 헤어나지 못할 운명이란 얘기다.
거야가 선창하고 소여가 따라 부르는 '도돌이표 레퍼토리' 중 단연 최악은 탄핵 줄다리기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머릿수로 밀어붙이더라도 최종 관문인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공산이 커서다. 지난 22대 국회에서 야권은 이태원 참사를 빌미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탄핵소추했으나 헌재가 기각했다. 민주당은 이번에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취임한 지 이틀 만에 탄핵소추안을 강행 처리했다. 하지만 고작 취임 3일 차까지 어떻게 탄핵사유가 될 '헌법·법률 위반'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공직 적격성을 놓고 정치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히 '묻지마 탄핵'이다.
얼핏 보면 압도적 의석(192석)을 가진 야권의 힘자랑은 위력적이다. 그러나 실속은 적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으나, 얻은 건 없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을 막겠다며 이진숙 탄핵소추로 방통위의 주요 업무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친야 성향인 MBC 경영진을 문재인 정부 때처럼 계속 민주당 영향권에 묶어두려는 속마음만 들킨 채 이를 확실히 관철하진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8·18 전당대회에서 대표 연임 도전을 공식화하면서 '먹사니즘'이란 조어를 들고 나왔다.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이 우리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면서. 포퓰리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본○○ 시리즈'에다 중도층을 겨냥해 이재명식 신성장론을 보탠 셈이다.
그런데도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대부분 국민의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채상병 사건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구설 등 여권의 각종 악재를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는데도 말이다. 예컨대 지난달 26일 공개한 갤럽 조사에서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이 35%, 민주당이 27%였다.
이는 민주당이 '먹사니즘'과 정반대 행태를 보인 결과일 듯싶다. 집권 때는 불법파업을 조장한다는 재계의 반발과 역풍을 우려해 처리할 엄두를 못 냈던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게 그렇다. 추경호 국힘 원내대표가 "(야당이) 탄핵 추진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탄추니즘'을 막무가내로 외치고 있다"고 지적한 '탄핵 중독증'도 마찬가지다.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켰는지는 모르나, 민주당의 오만과 독주가 무기력한 여당의 지지도를 떠받치는 에너지원 구실을 하는 역설을 빚고 있어서다.
거야의 입법 폭주와 소여의 거부권이 건건이 부딪치는, 불안한 쳇바퀴 위에서 어느 쪽도 승자로 설 순 없다. 멍드는 건 민생일 뿐이다.
며칠 전 양측이 여·야·정 민생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니, 만시지탄이다. 전세사기특별법, 간호사법, 폭염기 취약계층 전기료 감면 등 비쟁점 현안부터 합의해 나간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든 야든 다음 대선 승리를 정말 원한다면? 소모적 정쟁으로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바보들의 행진'을 멈추고 민생 살리기 경쟁을 본격화하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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