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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땅이나 사람에게도 풍(風)이 드나드는 OO이 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땅이나 사람에게도 풍(風)이 드나드는 OO이 있다.
조선 후기에 전국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다. 평안도(平安道)은산현(殷山縣)의 그림지도에는 풍혈(風穴)이 표시되어 있다. 출처:세종지리지


옛날 한 여름, 어느 의원이 몇 명의 제자들과 멀리 왕진을 떠나게 되었다. 의원은 중풍 치료를 잘 해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얼마 전 높은 벼슬아치가 중풍에 걸려 왕진을 청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들은 길을 떠났고, 한 여름이어서 뙤약볕을 피해서 산길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너덜지대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땅속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것이다.

한 제자가 “스승님, 지금 땅속에서 찬바람이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살펴보니 정말 너덜지대 바위틈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기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한 겨울의 찬공기처럼 서늘했다.

스승은 “풍혈(風穴)이로구나.”라고 했다. 제자들은 “풍혈이라니요? 땅에도 혈(穴)이 있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스승은 “풍혈은 땅속에서 바람이 나오는 혈을 말한다. 여름에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심지어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풍혈이 있으니 이곳을 빙혈(氷穴)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이들이 찾아낸 풍혈의 구멍 입구는 3척 정도 깊었고, 너비는 4척 8촌, 가로로는 5척 1촌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안쪽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승과 제자는 풍혈 입구에 도란도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찬바람이 감도는 곳이니 무더위에 모두들 잠시 쉬어가자는 심산이었다. 한 여름이어서 옷을 얇게 입었는데, 추운지 양팔을 비비는 제자도 있었다.

그때 한 제자가 “스승님, 땅에 풍혈이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의 몸에도 풍(風)자가 들어간 혈자리들이 많은데, 혹시 그 혈자리들을 통해서 풍(風)이 드나드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스승은 “맞다. 네 말이 맞구나. 혈자리 이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풍(風)자가 들어간 혈자리는 풍사(風邪)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풍이 드나들기도 하고 풍을 치료하기도 한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다른 한 제자가 “풍병(風病)은 어떤 병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옛말에 풍병은 백병(百病)의 우두머리라고 했다. 그만큼 풍에 의한 병도 많고 풍에 의한 병은 심각하기도 하다. 가벼운 찬바람에 의한 감기도 풍병이지만, 팔다리가 마비되는 중풍(中風)도 풍병이다. 그리고 풍의 성질은 빠르고 변화가 심해서 병세가 급박하게 변한다. 관절에도 영향을 미치면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통풍(痛風)이나 백호역절풍(白虎歷節風)도 풍병이다. 뻣뻣해지고 온몸이 강직이 되는 것도 풍병으로 보는데, 파상풍(破傷風)이 이것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그 제자는 다시 “그럼 풍을 치료하는 풍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풍(風)자가 들어간 혈자리로는 머리에는 풍지(風池)와 풍부(風府), 예풍(翳風)이 있고, 등에는 풍문(風門)이 있고, 다리에는 풍시(風市)가 있고, 발에는 팔풍(八風)이 있다. 풍자가 들어가 혈자리는 바람을 막기 때문에 감기와 중풍, 풍사로 인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풍병에는 풍혈(風穴)에 침을 놓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가 묻기를 “방금 풍혈(風穴)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사람에 있는 혈자리들의 이름을 보니 자연의 닮았습니다.”라고 했다.

스승은 “그렇구나. 자연을 대우주라고 하면 사람은 소우주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되겠다.”라고 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혈자리가 움푹 파인 곳은 골짜기와 같아서 곡(谷) 자를 붙였다. 손등의 합곡(合谷), 발등의 함곡(陷谷), 무릎 오금이의 음곡(陰谷)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혈자리들은 기운이 깊게 파고 들어 장병에 좋다. 또한 시냇물과 같이 물이 흐르는 곳과 같은 곳에는 계(谿) 자를 붙였다. 손목의 양계(陽谿), 발목의 해계(解谿)와 태계(太谿)가 이에 해당한다. 이 혈들은 막힌 기운을 흐르게 하면서 뚫어준다. 그리고 샘물처럼 기운이 솟아나는 곳에는 천(泉) 자를 붙였다. 겨드랑이의 극천(極泉)과 발바닥의 용천(涌泉)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혈들은 기운이 나게 한다. 그리고 언덕처럼 경계가 되는 곳은 릉(陵) 자를 붙었는데, 바로 손목의 대릉(大陵)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산처럼 속은 곳은 산(山) 자를 붙었는데, 종아리의 승산(承山)이 여기에 해당한다.”라고 했다.

제자들은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스승은 이어서 “물이 모여있는 연못과 같은 곳에는 택(澤), 지(池), 연(淵)을 붙였다. 택(澤) 자로는 팔꿈치 오금부위의 척택(尺澤)과 곡택(曲澤)이 있고, 지(池) 자로는 팔꿈치의 곡지(曲池)와 뒷덜미의 풍지(風池)가 있고, 연(淵) 자로는 손목의 태연(太淵), 팔꿈치에 청냉연(淸冷淵)이 있다. 모두 물의 흐름에서 비롯된 혈자리 이름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제자 중 한 명이 “혹시 택(澤), 지(池), 연(淵)의 차이가 있습니까? 모두 연못을 뜻하는 한자어인데 말입니다.”라고 물었다.

스승은 “지(池)는 지대가 낮은 곳에 물이 모여서 고여 있는 형태다. 우리가 말하는 보통 연못이 되겠다. 택(澤)은 지(池)보다 상대적으로 얕은 늪지에 가깝다. 그리고 연(淵)은 하천이나 강의 절벽 아래, 폭포 아래에 깊이 파인 곳을 말한다. 그래서 혈자리를 보면 웅덩이나 연못처럼 푹 파인 곳을 지(池)라고 했고, 약간 펑퍼짐하게 퍼진 곳을 택(澤)이라고 했고, 흐름이 끊기듯이 패인 곳을 연(淵)이라고 했다.”라며 설명을 했다. 제자들 이구동성으로 “사람의 몸에는 자연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감탄했다.

산의 너덜지대에서 만난 풍혈 때문에 제자들은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한참의 시간이 흘러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이들은 서둘러서 왕진길을 재촉해서 환자의 집에 도착했다.

스승은 벼슬아치 중풍환자를 진찰했다. 벼슬아치는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와서 팔을 들어 올리거나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릴 수 없었다. 혼자서는 스스로 서 있거나 걸을 수도 없었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고 말이 어눌했다. 전형적인 언어장애가 동반된 우반신불수였다.

보통 사람의 언어중추는 왼쪽 뇌에 있기 때문에 왼쪽 뇌에 중풍이 오면 언어장애와 함께 우반신 마비가 오고, 오른쪽 뇌에 중풍이 오면 언어장애가 없이 왼쪽 마비만 온다.

스승 의원은 환자에게 침을 놓았다. 스승은 정수리의 백회(百會), 귀 앞의 머리카락 가장자리의 곡빈(曲鬢), 어깨의 견정(肩井), 허벅지 다리의 풍시(風市), 무릎 아래의 삼리(三里), 발목 위의 절골(絶骨), 팔꿈치의 곡지(曲池)에도 침을 놓았다.

제자가 묻기를 “이 혈들은 어떻게 결정하신 겁니까?”하고 물었다.

스승은 “바로 이전의 명의들의 경험했던 중풍칠처혈(中風七處穴)이다. 보통 칠풍혈(七風穴)이라고도 부른다. 무릇 사람이 풍에 맞으면 말이 어눌해지고 한 쪽 몸을 마음대로 못쓰게 되는데 방금 침을 놓았던 7군데에 일제히 침과 뜸을 뜬다. 만약 중풍의 증상이 왼쪽에 나타나면 오른쪽을 치료하고 증상이 오른쪽에 나타나면 왼쪽을 치료한다. 의서에 보면 중풍칠처혈은 중풍에 대한 효능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이니 낫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스승은 풍(風) 자가 들어간 혈자리인 뒷머리쪽의 풍지(風池)와 풍부(風府), 예풍(翳風) 그리고 마비된 다리 쪽의 풍시(風市) 등에도 침을 놓았다. 특히 풍문, 풍지, 풍부, 예풍 등 사풍혈(四風穴)이라고 하는데, 이곳 또한 집중적인 침치료를 했다.

벼슬아치는 이렇게 침치료를 하면서 어눌한 말투가 조금씩 뚜렷해 졌으며 우측 팔다리의 마비 증상도 조금씩 풀렸다. 어느덧 혼자서 걸을 수 있었고 혼자서 숟가락을 들어서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중풍치료에 풍혈(風穴)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 제목의 ○○은 ‘풍혈(風穴)’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세종지리지> 慶尙道, 安東大都護府, 義城縣. 風穴. 在縣南三十四里永山寺北大岩下有石穴, 穴口高三尺, 廣四尺八寸, 橫入五尺一寸餘. 又有氷穴直下, 廣一尺, 深可量處五尺. 其下回曲, 深淺難量. 立夏後, 氷始凝, 極熱則氷堅, 霾雨則氷釋. 春秋不寒不熱, 冬則溫氣如春. (경상도, 안도대도호부, 의성현. 풍혈. 현 남쪽 34리 되는 빙산사의 북쪽 큰 바위 밑에 있다. 석혈이 있는데, 혈구가 높이 3척, 너비 4척 8촌인데, 가로로 5척 1촌여가 넘게 들어갔다. 또 빙혈이 있는데, 직하의 너비가 1척이요, 깊이는 헤아릴 수 있는 곳이 5척이며, 그 밑은 돌고 굽어서 심천을 측량하기가 어렵다. 입하 후에 얼음이 비로소 얼고, 극히 더우면 얼음이 단단하게 굳으며, 흙비가 오면 얼음이 풀린다. 봄과 가을에는 춥지도 하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며,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봄과 같다.)
<의휘> 風病. 風病有左不遂, 右不遂, 全身不遂, 口眼喎斜者. 外治則當針風穴, 內服雙合湯, 二四湯, 木通等湯. (풍병에는 좌불수, 우불수, 전신불수, 구안와사가 있다. 겉을 치료할 때는 풍혈에 침을 놓아야 하고, 쌍합탕, 이사탕, 목통 등의 탕을 복용한다.)
○ 無論男女經宿, 而猝然半身不遂, 針七風穴神驄四穴, 取汗, 連一朔爲之則效. (남녀와 기간을 막론하고 갑작스런 반신불수에는 7개의 풍혈과 사신총 4혈에 침을 놓고 땀을 내는데, 초하루마다 하면 효과가 난다.)
○ 邪疾, 頂上毛挽使伏, 自大椎, 用手按之, 至痛處骨, 灸三壯, 針四風穴. 風中, 風池, 風府, 翳風 是也. (사질에는 정수리의 머리털을 당겨 들뜨게 하여 엎드리게 한 다음, 대추혈에서부터 손으로 눌러 통증이 있는 곳의 뼈 부위에 뜸을 3장 뜨고 사풍혈에 침을 놓는다. 풍중, 풍지, 풍부, 예풍이 사풍혈이다.)
<향약집성방> 凡中風服藥益劇者, 但是風穴, 悉皆灸之三壯, 無不愈也. (대체로 중풍에 약을 먹고 나서 더 심할 때에는 단지 풍혈에 모두 3장씩 뜸을 뜨면 낫지 않는 것이 없다.
)
<침구자생경> 凡人 不信此法, 或飮食不節, 酒色過度, 忽中此風, 言語蹇澁, 半身不遂, 宜七處齊下火,
各三壯. 風在左灸右, 右灸左. 百會, 耳前髮際, 肩井, 風市, 三里, 絶骨穴, 曲池, 七穴神效. 不能具錄, 依法灸, 無不愈. (무릇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고, 음식을 절제하지 않거나, 성욕을 과도하게 하다가 갑자기 이러한 풍에 맞으면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몸을 마음대로 못쓰게 되는데 7군데에 일제히 뜸을 3장씩 뜬다. 만약 중풍의 증상이 왼쪽에 나타나면 오른쪽에 뜸을 뜨고 중풍의 증상이 오른쪽에 나타나면 왼쪽에 뜸을 뜬다. 백회, 귀 앞의 머리카락 가장자리 곡빈, 견정, 풍시, 삼리, 절골, 곡지 이렇게 7개의 혈은 효능이 뛰어나며, 일일이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이니 제시된 방법대로 뜸을 뜨면 낫지 않는 것이 없다.)

/ 한동하 한동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