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장 임명 놓고
논란 일어 기념식 두 쪽 나
독립운동 이념화 경계를
손성진 논설실장
우울한 광복절 아침을 맞았다. 이념 논쟁으로 기념식이 두 쪽이 났기 때문이다. 광복절마저 휘감은 이념의 굴레는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인식이 틀린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것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실제가 다른 데 있다. 김형석이라는, 야권에서 '듣보잡' 소리를 듣는 인물을 굳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과거에 3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김형석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독립기념관장은 광복회장처럼 대부분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맡았다. 전두환 정부 때 만든 독립기념관의 초대 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종질인 안춘생이었다. 10명 중 8명이 후손이다. 2명만 독립운동 또는 친일 문제 연구가를 임명했는데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였다. 그러니까 역대 우파 정부들은 모두 후손을 임명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독립기념관장이 후손을 예우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자격과 의식이 충분한 후손들이 지금도 많다.
독립운동을 친일과 반일로 쪼개 정치적 선동에 활용하는 것은 좌파적 방식이자 시각이다. 지금 야당이 그렇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그랬다. 논쟁을 일으켜 휘말릴 이유가 없다. 좌파라고 할 수 없는 이종찬 현 광복회장이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뜻밖이다. 물론 그 전에 김형석이라는 인물이 발원지가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좌파의 친일 낙인은 문제가 많다. 백선엽처럼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소극적 참여자를 부역자로 몰아 낙인을 찍는 데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일제 조직에서 일한 한국인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봉선화'를 작곡한 민족음악가 홍난파의 친일 논란도 그 하나다. 홍난파는 일제에 저항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72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고 일제에 굴복, 전향서를 썼다. 항일운동은 묻힌 채 홍난파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홍난파처럼 사람이나 일이나 양면성이 있다. 한쪽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우리는 쉽게 범하고 있다. 이승만이 그렇고 박정희가 그렇다. 두 전임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맞지만, 현재의 경제대국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한 공적을 비판론자들은 깡그리 무시한다.
독립운동을 하고, 평화선을 그어 일본 선박을 나포하며 우리 바다를 지킨 이승만을 친일파로 내몰기도 한다. 이승만이 친일파와 손잡았다는 이유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 반민족 행위 경력자가 포함되지 않았음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박정희의 과거를 들추어 친일파라고 한다면 홍난파는 독립운동가로 부르는 게 맞다.
대한민국의 정신적 정통성은 임시정부에 있고, 법적 정통성은 이승만 정부에 있다. 그렇게 구별해서 보면 간단하다. 임정의 독립정신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또한 헌법을 제정해 공식 국가체제를 갖추고 유엔에서 합법적 정부를 인정받은 것은 제1공화국이다. 김형석은 이런 문제들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주장을 지금 와서 합리화한 측면도 있지만 학자의 시각에서는 제기할 수 있는 관점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으로 받들어야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광복 후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등의 망언으로 독립운동을 정치화·이념화한 김원웅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형석 임명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좋았다. 우파 입장에서 그의 논점이 입맛에 맞을지는 몰라도 부러 문제를 일으킬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건국절 논쟁이 밥 먹여주느냐'는 생각이라면 말이다.
독립운동만큼은 이념과 정치의 영역에서 분리해 순수한 청정구역으로 남겨 놓는 게 좋다. 광복회를 만들고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사실상 처음으로 주기 시작한 인물이 박정희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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