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강남시선] 안방싸움은 시작됐다

[강남시선] 안방싸움은 시작됐다
정인홍 정치부장 정책부문장
'협력적 경쟁관계' '경쟁적 협력관계'. 최근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주거니 받거니 한 덕담이다. 이 대표는 취임인사 차 조 대표를 만나 "두 당은 '사람인(人)자'처럼 서로 기대지 않으면 넘어지는 관계"라고 혁신당을 치켜세웠다. 친구라는 뜻의 '우당(友黨)'이란 말도 썼다. 조 대표도 "이 대표와 나는 누군가 '따따부따'(딱딱한 말씨와 어투로 다투는 모양새)해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있다"고 화답했다. 아무리 주위에서 이간질을 해도 서로 두터운 신뢰가 있다는 얘기다. 내친김에 조 대표는 양당 간 우정 확인 차 조국혁신당이 '제3 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교섭단체 요건을 현행 '20명 이상'에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민주당이 원내 1당으로서 입법권력을 틀어쥔 만큼 당을 완전 장악한 이 대표의 말 한마디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조국혁신당 소속 의원은 12명으로, 자력으로는 교섭단체 구성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에서 의원을 빌려줄 가능성도 작다. 나머지 군소정당을 몽땅 합쳐도 20석에 못 미친다. 조 대표가 '양당제 폐해 극복'과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제3 교섭단체 구성에 간절한 건 원내 권한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우선 실탄(국고보조금)을 받으니 정당 운영에 필수인 재정 여력이 좋아지고, 각 상임위원회에 간사를 둘 수 있어 각종 법안 심사와 청문회, 의사일정 조율 과정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 대표는 일단 긍정적이나 민주당 내부에선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조국혁신당의 존재감만 키워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총선 비례대표 선거 결과의 충격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민주당은 총 175석을 얻어 21대에 이어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정치적 텃밭인 호남지역(광주, 전남·북) 비례대표 선거에선 조국혁신당에 다 밀렸다. 당시 많은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사법리스크가 있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엔 지역구 표를, 비례대표 선거에선 조국혁신당에 한 표를 던졌다. 그 결과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조국당(47.7%)이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36.3%)을 제치고 1위를 거머쥐었다. 전북(조국당 45.5%, 민주연합 37.6%), 전남(조국당 43.9%, 민주연합 39.9%)도 조국당이 이겼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조국당을 '(민주당 지지층 상당수가) 마음 둘 곳이 없었는데 등장한 친정 같은 존재'로 비유했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 부정적인 민주당 지지층에 새롭게 기댈 언덕이 생겼다는 뜻이다. 전국 표심의 바로미터인 서울·경기·인천 '빅3' 수도권에서도 각각 2·3위인 민주연합과 조국당 간 표 차이는 12만~35만표에 불과했다.

같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신생정당이 민주화의 정통성을 지닌 유구한 역사의 민주당을 상대로 기적에 가까운 승률을 올린 것이다. 총선 직후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텃밭인 호남에서 조국당에 뒤진 것에 충격이 매우 컸다고 한다. 여전히 범진보 진영의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에선 이 대표가 압도적이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민주당이 크게 앞선다.

하지만 늘 정치적 고비 때마다 전략적 선택을 해온 호남 민심이 조국당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 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이미 양당의 활 시위는 앞으로 치러질 모든 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양당은 10·16 재보선 대상인 전남 영광군·곡성군수 등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낼 예정이다.

조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에서 "호남은 현재 사실상 민주당의 일당독점 상태이다.
고인물은 썩는다"며 2026년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에 후보를 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질세라 민주당도 이날 '텃밭 수성'을 외쳤다. 바야흐로 호남의 맹주 자리를 꿰차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haeneni@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