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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 컨틴전시 플랜] 최저임금 해법은 '디테일'에 있다

구분·차등 용어부터 갈등
추상적 이념 논쟁, 소모전
정책 실행·효과성 따져야

[조창원 컨틴전시 플랜] 최저임금 해법은 '디테일'에 있다
조창원 논설위원
최저임금 적용 대상을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최저임금 기준이 너무 높아졌으니 상황에 따라 적용 대상을 나눠보자는 게 핵심 쟁점이다. 국내 이슈로는 업종별·지역별·연령별로 최저임금 적용선을 따로 두자는 것이다. 국외적으론 국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별도로 두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려면 두 가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선 최저임금 적용 대상을 규정하는 단어 선택에서부터 의견차가 크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최저임금 적용 대상을 논의할 때 등장한 용어가 '구분'과 '차등'이다. 언론에서는 두 단어를 혼용하는 패턴을 보인다. 반면 정부는 일관되게 '구분'이란 단어를 쓴다.

'구분'은 차별할 의도가 없으며 차별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려는 동기가 차별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여나 시행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하더라도 그건 부작용일 뿐이라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이라고 못을 박는다. 반면 차등은 구분을 짓는 그 자체가 차별이라는 입장을 대변한다. 일부러 차별하려는 의도가 있든 없든 구분 자체가 차별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최저임금 적용 논쟁은 이처럼 '구분'과 '차등'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이념적 줄서기를 하고 있다.

구분 혹은 차등 관점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된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이 국내와 국외에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얘기다. 가령 국내에서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한다면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똑같은 룰이 적용된다. 이를 차등이라 여긴다면 국내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 모두에게 최저임금을 동일 적용해야 한다.

구분과 차등이라는 단어 선택은 근본적 질문이면서도 추상적 이념 논쟁이다. 자칫 쳇바퀴만 도는 공허한 논쟁으로 끝날 수 있다. 따라서 실체적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외국에선 어떻게 한다는 둥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이제는 국내에서 실제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정책의 효과성 검증으로 논의의 단계가 넘어가야 할 때다. 바로 디테일 검증이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하면 지금보다 전체의 편익이 높아진다는 과학적 근거를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검증해야 할 이슈는 생각보다 많다. 가령 외국인 가사돌봄 노동자를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은 그들의 생활 수준이 한국이 아닌 자국이라는 점을 근거로 댄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가사돌봄 서비스를 하는 외국인 여성인력이 한국의 물가환경에서 생활하고 소비하는 비용은 어떻게 추계할 것인가.

또 다른 쟁점으로 사적 계약을 통한 최저임금 적용이 있다. 이 안대로 시행했다가 사적 계약을 악용하는 부작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더욱 근본적인 쟁점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할 경우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에 위배된다는 논쟁이다. 값싼 외국인 노동인력이 급하니 ILO 협약 위배는 감당하자는 건지,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건지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에 "헌법, 국제기준, 국내법 등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힌 주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존 제도 질서를 새로 바꾸려는 측에서 품을 많이 파는 게 세상 이치다.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논쟁에서 '구분' 적용론자들의 준비가 더욱 견고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는 게 마땅하다는 명분에 수긍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명분을 현실로 만들려면 '신박한' 아이디어나 주장을 넘어 정책의 실행 가능성과 효과성까지 챙기는 치열함이 요구된다. 어차피 제도를 바꾸려면 입법 논쟁과 사회적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jjack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