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바닥 드러내
우린 스마트한 기법으로
대북 심리전 차원 높여야
구본영 논설고문
북한이 월례행사처럼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이달까지 총 11차례다. 지난달 24일에는 대통령실 청사에까지 쓰레기 더미가 떨어졌다. 다만 이달 11일엔 10여개 빼곤 대부분 북한 지역에 투하됐다고 한다. 풍향조차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풍선을 띄운 결과다. 그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정부의 맞대응에 따른 북한 정권의 조급함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물풍선은 분단 이후 70여년간 저지른 북한의 도발 중 가장 저열한 행태다. 풍선에는 비닐과 폐종이를 비롯해 북한의 곤궁한 경제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물로 가득했다. 몇 번씩 기워 신은 양말과 자투리 천 따위에다 우리 사회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각종 기생충도 검출됐다. 구충제가 태부족한 북한에서는 아직도 화학비료 대신에 인분을 쓴다는 뜻이다.
남북 간 풍선을 이용한 체제 선전전은 1950년 6·25전쟁 때 시작됐다. 북한은 2016년 초에도 전단지 풍선을 내려 보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인신공격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삐라 뭉치가 공중에서 살포되지 않고 통째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전력난으로 풍선을 띄울 수소가스를 어렵사리 조달한 북한 정권으로선 속이 쓰렸을 법하다. 기대했던 대남 선동효과를 거두진 못했기에.
올해 오물풍선도 타이머 등 장치가 어설픈 탓인지 뭉치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건규칙을 어긴 김정은 정권의 엽기적 행태는 국제적 망신만 샀다. 오죽하면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 출신이란 점에 대해 유일하게 수치감을 느끼는 게 '쓰레기풍선'"이라고 했겠나.
결국 오물풍선이 북한 스스로 심리전의 한계를 자인한 격이다. "오물밖에 그 어떤 정보를 담아도 남한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음을 인정한 꼴"(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이란 지적이 그럴싸하다. 그런데도 오물풍선에 매달리는 까닭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과 정부의 확성기 방송의 효과가 위력적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최근 북한이 전단 속 USB에 담긴 남한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명을 공개 처형했단다. 김정은도 바깥 세상의 진실이 유입되면 세습체제를 지킬 수 없다고 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북측의 오물테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혹자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물풍선에 생화학무기를 실어 보내는 등 더 호전적 보복 도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북한 정권의 시각에서 남북 문제를 풀려는 '내재적 접근'으로 인한 피해는 당장 북한 주민이 입게 된다. 궁극적으론 통일의 길도 멀어져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 김정은 정권이 민생을 팽개치고 핵무장에 매달리는 행태를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과거 독일 통일 전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 주민들은 서독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경제·인권·복지 등 모든 측면에서 서독이 월등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통독 국면에서 서독 체제에 합류하는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 반면 극단적 '폐쇄회로 사회'의 북한 주민들에게 대북 전단은 바깥 세상을 보는 바늘구멍 같은 틈이다. 당연히 이 최소한의 통로로나마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의 대응포격 가능성 등은 경계해야 한다. 민간단체들이 요란하게 알리면서 전단을 날려 보내는 이벤트는 자제해야 할 이유다. 차제에 전단이나 확성기보다 업그레이드된 수단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얼마 전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는 "위성 등의 수단을 포함한 혁신적 기술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중장기적으로 북한 전역에 라디오와 TV 전파를 송출할 수 있는 기동중계기 도입과 북한 주민 휴대폰과 인터넷의 접속 등 더욱 스마트한 심리전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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