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우수사례 선정된 하보람 서울서부지검 검사
불법 공유 사이트에 영화 올리고 다운로더 고소 사건
'저작권법 위반 사건 수사 체크리스트' 만들어 배포
"하나하나 배우고 하고픈 수사 하는 게 검사의 매력"
지난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만난 하보람 서울서부지검 검사(변호사시험 4회) /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조사했다. 영화업계 여기저기 연락해서 '어떻게 물어봐야 뭐가 나오는지'부터 물었다."
지난 13일 만난 하보람 서울서부지검 검사(변호사시험 4회·사진)는 이같이 말했다. 하 검사는 영화 불법 다운로드를 유도하고 합의금을 뜯어낸 사건을 수사해 지난 5월 23일 대검찰청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웹소설 작가 A씨가 영세 영화사들이 제작한 영화를 불법 공유사이트에 일부러 올린 뒤 사람들이 다운로드 받으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합의금을 뜯어낸 사건이다. A씨는 영세 영화사들과 공모해 이들에게서 저작권 관리를 위임받은 뒤 대리 고소를 통해 합의금을 나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A씨는 아내 B씨와 함께 1000건 이상의 무더기 고소를 진행해 합의금 9억원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하 검사는 유사한 저작권법 위반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B씨가 서로 다른 영화사 2곳의 직원 자격으로 동시에 고소를 대리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수사를 통해 A씨 부부가 영화사에서 실제로 재산권 지분을 양도받은 것이 아니라 허위의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서만을 작성해 고소할 수 있는 외형만 갖춘 것으로 확인했다. 현재 A씨 부부는 재판에 넘겨졌다.
하 검사는 이번 수사를 통해 배운 저작권법 수사 노하우를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 지방검찰청에 배포하기도 했다. 하 검사는 "내가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품을 들이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를 하다 보니 '다른 검사님들은 나처럼 무익한 시간 낭비를 안 하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체크리스트 배포는 대검에서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4~5편 정도 나왔을 정도다. 하 검사는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에 모든 권리가 있는 게 아니더라. 극장에 영화를 배급하는 배급사의 권리도 있고, OTT에 제공하면서 생기는 콘텐츠 이용료 정산 문제도 있다. 개별 영화마다 권리관계를 따져 제작사의 저작권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적재산권이 요즘 떠오르는 새로운 분야라 권리관계의 특수성에 대해 수사기관 전반적으로 다들 이해가 부족하다"며 "그 틈을 노려 이런 편법적인 고소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작권법 전문 검사 아니냐는 칭찬 겸 질문에는 겸손하게 손사레를 쳤다. 그는 "아직까지도 모든 전담 부서를 해본 것은 아니"라며 "사건을 맡으면서 매번 새로운 수사 노하우를 배우는 것 같다. 지적 재산권 말고 다른 분야에 대한 사건을 맡게 되면 또 공부하면서 수사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이어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검사 일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검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 검사는 로스쿨 2학년 재학 시절 학교의 튜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검사 선배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진로 고민이 돼서 연락을 했더니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진지한 조언을 해줬다"며 "검찰은 위계 질서가 강하고 남성 중심적인 부분이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겪어보니 선배의 말이 맞았다고 그는 말했다. 한마디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시간을 투입해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제는 하 검사가 서부지검에서 로스쿨 인턴들을 지도하고 있다. 선배가 했던 것처럼 검사직을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법조계에 유리 천장은 있고 돌파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다만 검찰은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점점 더 여자 선배, 여자 검사장님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변호사는 어떤 판이 짜이면 그거에 맞춰서 이렇게 변론 대응을 해야 하지만 검찰은 1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그게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적은 원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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