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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제2의 쿠팡을 기다리며

[강남시선] 제2의 쿠팡을 기다리며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 12년 만에 돌아온 유통업계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해 있었다. 복귀 후 일주일간 자주 들은 말들은 생경했다. '이커머스' '무탠다드' '올·무·다' '쿠팡' 등등. 물론, 나 같은 아저씨들도 쿠팡은 꽤 알고 있다. 새벽마다 문 앞을 찾는 로켓배송. 로켓배송 덕에 공짜 영상을 즐기는 쿠팡플레이. 이런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와우 멤버십. 거기에 나스닥 상장으로 서학개미들의 주종목이다.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쿠팡은 가정의 일부분이 됐다. 집사람은 새벽배송을 주로 컬리를 이용하다 지금은 쿠팡으로 갈아탔다. 멤버십 요금 인상으로 '탈팡족' 이야기가 많은데 집사람의 쿠팡 사랑은 견고한 것 같다. 쿠팡으로 바꾼 이유를 물으니 명쾌했다. "물건이 많고, 싸게 판다"는 것이다. 새벽배송이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쿠팡은 이제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중추로 성장했다. 전 세계 이커머스 시장을 강타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에 대적할 유일한 토종 기업으로도 평가받는다. 현재 주가 약세로 시가총액이 400억달러 수준이지만 과거를 아는 입장에선 놀라울 뿐이다.

#. "소셜커머스 사이트들 때문에 '도매금' 취급 당할까 걱정입니다." 정확히 13년 전 유통 담당기자일 때 썼던 칼럼의 첫 문장이다. 태동기 소셜커머스의 소비자 피해 문제에 대한 오픈마켓 관계자의 답이었다. 당시 이커머스 시장은 G마켓, 옥션, 11번가 같은 오픈마켓이 주류였다. 한마디로 '깜도 안 되는 곳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오픈마켓의 오만이 깔려 있었다. 그때 소셜커머스는 티켓몬스터, 쿠팡,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 그루폰이 있었다. 유통산업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소셜커머스는 백조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한 축이 될 거라고는 믿었지만 이커머스의 핵심이 될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 못했다. 무엇이 10여년 만에 유통산업 지형을 이토록 바꿀 수 있었을까. 그 잘나가던 G마켓과 옥션은 쿠팡에 밀려 이마트에 흡수돼 충격을 줬다.

#. 2010년대 초반 등장한 소셜커머스는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한 공동구매(공구) 형식을 기반으로 한 상거래 모델이다. 그래서 구매자가 많을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였다. 티몬이 가장 먼저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쿠팡과 위메프가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동네 식당이나 미용실, 공연 정도가 상품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대중화가 이끈 모바일 혁신은 소셜커머스를 일약 산업의 한 축으로 올려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셜커머스의 인기도 시들어갔다. 소비자들은 일정 기간 안에 공동구매가 성사되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불편해했다. 한계를 느낀 소셜커머스 기업들은 다양한 상품군과 더 나은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는 이커머스로의 전환을 꾀했다. 특히 쿠팡이 가장 빨리 이커머스로 전환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온라인 쇼핑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당일 또는 익일 배송 보장은 소비자의 충성도를 확보했다. 물론 로켓배송을 안착시키다 오랫동안 막대한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 사실 소셜커머스 초기에는 티몬이 쿠팡을 제치고 업계 1위였다. 도토리 키재기였지만 쿠팡은 티몬을 이상하게도 넘지 못했다. 지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티몬을 이끌던 신현상 대표와 쿠팡의 김범석 대표는 늘 비교대상이었다. 당시에는 신 대표가 업계를 넘어 유통산업의 미래 리더로 더 부각됐다. 흑자도 먼저 내고, 성장률도 앞서니 그런 평판은 당연했다. 반면 김 대표는 무리한 투자에 집중한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쿠팡이었다.
해외 상장, 인공지능(AI)과 물류 자동화, 로켓프레시(신선식품 새벽배송) 등 유통혁신의 큰 그림을 그때는 간파하지 못했다. 단기 성과에 연연했던 티몬과 위메프는 완전히 경쟁에서 밀려 이제는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신세다. 이커머스 산업이 또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설렐 정도다.

cgapc@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