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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균 칼럼] 의정 갈등 200일, 출구는 있는가

응급실 의사 없어 난리
개혁 옳아도 국민 불안
여야, 책임지고 중재를

[정상균 칼럼] 의정 갈등 200일, 출구는 있는가
정상균 논설위원
의료개혁이 난맥상이다. 8000여명의 전공의들이 사라졌다. 종합병원은 적자에 빠졌다. 시급히 돌아가야 할 응급실은 의사가 없어 난리다. 응급·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은 지쳤다. 지난 7개월 정부는 압박과 유화책을 쏟아냈다. 전공의 복귀 명령과 면허정지 철회, 수련 특례와 수당 지원, 의료수가 제도 합리화와 지역·필수의료 강화 대책 등등. 이렇게 투입하는 건강보험재정과 예산이 1조원을 넘는다. 하루 100억원꼴이란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억하심정 요지부동. 2025학년도 의대증원 백지화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지지한 다수의 국민들은 불안하다. 전공의 이탈 205일째, 세 가지 질문을 해보자.

누구 책임인가. 정부와 의사집단은 물과 기름처럼 갈라섰다. 의사집단은 "근거도 없는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지 않았나. 그래놓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정부는 "수차례 증원 문제를 꺼냈으나 무대응한 것이 의료계다. 지난 27년간 증원 한 번 못했다"는 것이다. 응급·중증환자들도 병원을, 의사를 못 찾아 악전고투 중이다. 의대 증원 반대파들은 "의료비 부담이 폭증하고 의료 수준은 폭망한다" "봐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의료 붕괴는 지금부터"라는 투로 정부의 무능을 조롱한다. 공포와 불안을 부추긴다. 피해자는 침묵한 국민들이다.

타협이 가능한가. 한 치의 양보도 않겠다는 의사집단, 애초에 잘못된 2025학년도 1500명 증원부터 백지화하자는 게 그들의 요구다. 9일 의과대학을 포함해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일제히 시작됐다. 과정이 어떠했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의대 증원은 사회적 약속이다. 백지화 아니고는 '대화 불가'라는 행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나 의사집단이나 소송전과 정책 불신, 어떠한 형태로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의사집단은 내후년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여야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도 얻은 것은 없나. 세계 최고라 하는 의료선진국 이면에 가려진 왜곡과 불합리를 속속들이 보고 있다. 수술·처치를 할수록 손해보는 엉터리 필수의료 수가, 소송에 더 많이 내몰린 신경외과, 소아·산부인과 의사들, 외래환자로 손쉬운 돈벌이, 덩치만 불린 상급종합병원, 시급 1만5200원 주100시간 일하는 필수의료과 전공의의 열악한 처우,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비급여 끼워팔기, 탈법적 혼합진료 등등. 잘만 돌아가는 줄 알았던 의료체계, 그 이면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의대 증원정책 전후의 오락가락 말바꿈과 준비 부족, 비타협 불통을 보여준 정부도 다를 바 없다. 의사집단은 자부심을 앗아간 정부를 적으로, 자신들은 개혁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폐쇄적 직역 내부의 "양보와 포용" 목소리는 짓밟는다. 응급실을 지키는 동료의사를 부역자라 비하한다. 의료개혁 지지 민심이 의사집단 동조로 돌아섰다는 생각이면 국민을 한참 얕잡아 본 오만이자 오판이다.

완전한 조건에서의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란과 고통, 갈등은 필연이다. 이를 공정·투명하게 분담하는 것이 옳은 과정이다. 한쪽에 입 닥치고 참으라 할 수 없고, 적당히 봉합하거나 없던 일로 한다면 아니함만 못할 것이다.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의 취지는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이행하는 힘, 매듭짓는 힘은 국민적 지지와 협조가 지탱한다. 지금껏 해온 개혁의 순작용을 살려내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개혁은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개혁이 늦으면 늦어질수록 국민이 지불하는 유무형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하루 100억원의 혈세 중 임시방편 땜질식 대응, 소모성 지출에 상당수 새나갈 것이다.
의정갈등 200일 만에 여야가 의료계와 정부, 4자 협의체를 만들어 의료개혁 출구 찾기에 들어갔다. 먼 길이 아닌데 너무 돌아왔다. 의사집단은 내민 손을 다시 내칠 건가. 정치력은 설득과 중재, 대화다. 욕먹고 있는 직업정치인들이여. 국민이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도록 이해를 조정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정치' 같은 정치를 해보라.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