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조 들인 공정기술 넘겨
관련법 개정하고 선고 형량 높여야
조광현 안보수사지원과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 관련 피의자 구속 송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사당국이 4조원대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사건에 연루된 전직 연구원 등 30여명을 추가 입건했다. 이들을 인터폴과 공조해 확대 수사 중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 10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옛 하이닉스반도체 임원 2명을 구속, 검찰에 넘겼다.
이번 사건은 반도체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터질 게 터진 건데, 국가 첨단기술이 이미 상당 부분 유출된 뒤라 수사와 처벌이 한참 늦은 것이다. 최모씨는 지난 2020년 중국에서 청두시와 합작방식으로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을 설립,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기업 전문인력을 끌어들였다. 이듬해에는 중국에 반도체 D램 제조공장을 짓고, 다음 해 4월 시제품 생산에도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4조3000억원가량 들여 개발한 20나노급 D램 반도체 공정기술 상당수를 빼돌려 무단 사용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공장은 운영을 중단했다. 한국인 인력은 사실상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인력 빼가기는 인맥으로 알음알음 이뤄진다. 사람 간의 일이라 수사당국이 다 알아채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중국 반도체 합작사에 우리의 기술과 전문인력이 대거 유출되고 버젓이 공장을 돌릴 때까지 수사당국과 기업들은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첨단기술을 빼가기 위해 중국 등 후발 강국들은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돈과 명예를 주겠다며 유혹의 손을 뻗는다. 먹잇감은 반도체뿐이 아니다. 디스플레이, 배터리는 물론 세계 최고인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건조기술과 잠수함·전투기·전차와 같은 방산 등 걸리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기술을 빼가는 수법도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이번처럼 국내 기술자가 해외에 법인을 세워 전에 몸담았던 기업의 기술을 빼간 경우도 있고, 외국 기업이 국내에 설립하거나 인수한 기업에서 기술인력을 고용하거나 기존 기술을 해외로 빼가는 사례도 많다. 대놓고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의 전문가를 데려가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처벌과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미국, 대만 등은 첨단 국가기술 유출을 간첩죄에 준하는 수준으로 처벌한다. 일본은 반도체 등 보조금을 지원하는 5개 첨단산업을 국가 안보산업으로 명시한 경제안보법을 시행 중이다. 우리는 터무니없는 형량에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기술유출 관련 양형기준을 몇 달 전에 높인 게 고작이다.
국가 첨단전략기술 기업 인수합병(M&A) 시 국가 승인을 받도록 한 산업기술보호법, 전문인력을 지정·관리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간첩죄 적용대상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 등 여러 법 개정 논의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국회는 급할 게 없다는 듯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법과 처벌이 느슨하니 지난 5년간 유출건수는 적발된 것만 100건에 육박한다. 산업기술 유출은 국가경제 근간을 흔들고 국익을 해치는 중대범죄다. 강력한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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