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정치권 재검토 주장에
입시 전문가 "말도 안돼" 난색
'오락가락'교육정책 불신 불보듯
"정부·수험생에게 치명적인 일"
사교육 쏠림 부작용 고민도 부족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입시학원 뉴시스
의료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입시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미 내년도 수시모집 접수가 끝난 시점에서 의대 증원을 뒤집으면 수험생들의 혼란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의료계와의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시 원서 다 냈는데…" 여전히 불안한 수험생
18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의대 증원 백지화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정부는 마땅한 갈등 해소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의대 증원을 무를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치권 등에선 논의해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내년도 의대 증원을 유예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의대 증원 백지화는 수험생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다. 이미 내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지난주에 끝났고 수능을 불과 57일 앞둔 시점이다. 의대 증원을 고려해 수시 원서를 냈거나 대입에 뛰어든 수험생이 적지 않다. 올해 수능에 지원한 'N수생' 규모는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의대 증원의 여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을 백지화할 경우 학생들이 부담해야 할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이 코앞인데 의대 증원이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는 게 문제"라며 "올해 대입에 또 다른 변수가 있을지 여부를 두고 수험생이 느끼는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교육계에서도 누군가 나서서 수험생의 입장을 대변하고 혼란을 키워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조용하기만 하다"며 "수험생을 보호할 방어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입시전문가는 "의대 증원이 취소된다면 의대 증원을 고려하고 수시 원서를 접수한 수험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이러한 학생이 어디 한두 명이겠나. 다른 대학에 원서를 써서 합격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 백지화 시 후폭풍은?
정부가 의대 증원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증원 규모와 시점을 결정했더라면 지금처럼 수험생이 혼란을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백병환 정책팀장은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하지 않고 의대 증원을 밀어붙여 놓고 이제 와서 '학생 혼란 때문에 못 무른다'며 버티고 있다"며 "의대 증원안 자체를 잘못 설계해놓고 학생을 볼모로 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백 팀장은 "의대 증원으로 사교육과 의대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학생들이 느낄 부담에 대해선 얼마나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며 "학생 혼란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의대 증원을 더 신중하게 추진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만약 정부가 의대 증원을 뒤집는다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천재지변 등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유'가 있을 때 변경할 수 있는데, 이번 사안이 이러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의학교육 개선방안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2026년 의대 증원이 불투명해지면서 정부의 의학교육 개선방안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큰데, 2025학년도 의대 증원까지 물거품이 된다면 의대 인프라를 확대할 근거가 불분명해진다. 임 대표는 "정부 입장에선 의료 정상화와 입시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처럼 됐다"며 "만약 올해 의대 증원이 번복된다면 앞으로도 언제든 입시정책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정부에게나 수험생에게나 대단히 치명적인 일"이라고 전망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