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깊어진 골목상권
평소 80만원 내던 전기요금
8월에 120만원 나와 화들짝
소상공인 특화 요금 도입 등
정부 근본대책 마련 서둘러야
지난 1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뉴스1
서울 강북구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는 정모씨(71)는 8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나오는 전기요금은 150만원~200만원 수준이지만 이번에 받아든 고지서에는 380만원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폭염 때문에 전기료가 많이 나올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무더위가 9월까지 지속되면서 다음달 전기료도 걱정되지만 에어컨을 쉽게 끌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소상공인의 시름은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인 더위로 인해 에어컨 가동이 늘어나면서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특히 이달 중순까지 이례적으로 폭염이 지속되며 전기료 '폭탄'에 대한 소상공인의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24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6~8월)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기상관측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지난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열대야일은 20.2일로 평년치(6.5일)의 3배였고, 폭염일은 24.0일로 평년치 대비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8월 말인 절기상 '처서'가 되면 더위가 한풀 꺾이곤 하지만, 올해는 9월 중순까지도 늦더위가 이어졌다. 특히 서울은 지난 10일, 18일 폭염경보가 발효되기도 했다. 9월 중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건 지난 2008년 폭염특보제 도입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이번 폭염특보가 역대 가장 늦은 서울 폭염경보인 셈이다.
여름이 평년보다 길어지면서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더욱 커졌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방비 부담까지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소상공인은 냉방비가 부담스럽다고 하더라도 영업을 위해선 쉽게 사용량을 줄일 수 없어 더욱 막막하다.
경기 안산시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정모씨(65)는 "지속된 폭염으로 에어컨을 계속 가동하다보니 평소 80만원 나오던 전기요금이 지난달 120만원이나 나왔다"며 "자영업자 입장에서 에어컨은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무조건 가동해야 하는 건데, 평소보다 무더위가 길어지면서 9월 전기료까지 부담을 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여름이 더 길고 더워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는 점이다. 실제 기상청은 그간 봄철을 3~5월, 여름철을 6~9월 등으로 분류해 왔지만, 한반도 아열대화에 따라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져 최근 계절별 길이를 재조정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 문제로 전기료 인상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상공인 신모씨(29)는 "날씨는 점차 더워지고, 전기료는 계속 오를 텐데 앞으로의 비용 부담이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기료 부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전기료 부담을 완화하고자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 소상공인에게 전기요금 최대 20만원을 지원하는 '소상공인 전기요금 특별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지원 금액이 낮다며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 전기료 부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소상공인은 손님이 있든 없든 최소한의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냉·난방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여름엔 냉방비, 겨울엔 난방비 부담이 늘어난다"며 "이런 문제는 구조적으로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소상공인 전기요금을 산업용으로 바꿔주거나 소상공인 특화 전기요금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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