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 산업부장 산업부문장
2015년 6월 말. 삼성그룹을 출입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삼성전자 2·4분기 잠정실적 발표였다. 삼성전자 분기 실적 발표 하루 전에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는 후배기자의 말에 덩달아 걱정이 몰려왔다.
당시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 발표내용은 당연하게 신문 1면과 3면을 장식했다. 남들과 좀 더 다른 기사, 반 발짝 앞선 기사를 쓰기 위해 실적 발표를 앞두고 팀 후배들과 적잖은 토론을 벌였다. 그때 삼성전자 실적 기사를 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말이 바로 '초격차'와 '삼각편대'이다.
초격차는 말 그대로 후발주자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격차를 의미한다. '기술격차'에 초(超·뛰어넘다)를 붙인 이 단어는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이 2020년 내놓은 저서 '초격차'에서 쓰면서 널리 회자됐다. 사실 2000년대부터도 삼성전자 내부에선 '초격차'를 외치고 있었다.
실제 파이낸셜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지난 2009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국내 임원과 해외법인장을 포함,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부품(DS)부문 경영전략회의'에서 '초격차'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당시 DS부문장인 이윤우 부회장, 반도체사업담당 권오현 사장, LCD사업부 장원기 사장, 종합기술원 이상완 사장, 감사팀 윤주화 사장, 일본본사 이창렬 사장, 중국본사 박근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윤우 부회장은 "지금은 소위 '초격차 확대의 시대'"라며 "내부 효율과 스피드 경영을 가속화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하고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지금은 삼각편대가 기흥·화성-평택-용인을 잇는 '반도체 삼각편대'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10년 전만 해도 반도체-TV·가전-스마트폰을 삼각편대로 지칭했다. 2015~2016년 당시에는 반도체보다는 스마트폰이 사업실적이 더 뛰어나 삼성전자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했다. 갤럭시 스마트폰이 실적을 끌고 반도체가 밀고, TV·가전이 따라오는 식이었다. 한 부문이 어려워도 다른 부문이 실적을 뒷받침하면서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10년 만에 다시 들여다본 삼성전자는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라는 모건스탠리의 판단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비록 반도체의 겨울은 당장 오지 않겠지만 삼성전자 전체를 보면 걱정이 한가득 몰려온다.
삼각편대가 무너진 것은 물론 그동안 맏형 역할을 해온 반도체 부문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삼성전자에 노조가 생겨 휴게시간 준수, 휴일근로 거부 등 준법투쟁으로 반도체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1분 1초가 급한 삼성전자의 애를 태우고 있다. 6년 전 삼성전자와 '반도체 직업병'에 대해 합의한 반도체노동자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가 최근 또다시 직업병 이슈 몰이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해 4년여간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다. 1심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2심으로 이어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삼각위험이 삼성을 짓누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흔들린다고 대한민국이 흔들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를 나가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기아 등 대기업의 위상이 곧 대한민국의 위상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 수 있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의 큰 축이 흔들리는 것으로 결코 국민 개개인도 행복하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봄이 빨리 오길 바란다. 스프링 이즈 커밍(Spring is Coming)이 현실화되어서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 다시 우뚝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 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삼성전자 반도체인의 신조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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