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계기구 참여 요구에 즉시 거부한 의료계
의정갈등 풀 수 있다는 기대감 김이 새버린 상황
의협 "내년 의대증원 철회, 감원논의도 가능해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가 의료계가 즉시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의정갈등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시작부터 김이 새버렸다.갈수록 태산인 의정갈등은 현재 정부와 정치권의 어떤 제안에도 의료계가 받지 않으면서 사태 발생 7개월을 훌쩍 넘겼지만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의료계는 의정갈등 문제를 풀어보자는 정부와 여당의 협의체 등 협상 참여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고 있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의 전면 백지화를 희망하는 만큼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 가능성, 의료개혁을 추진한 정부 관계자들의 처벌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다.
1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내에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신설하고 의대 증원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의 입장을 청취하기로 했다. 의료계가 바라는 요구 사항 등을 수급 추계기구 내에서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의료인력 수급 논의는 인력수급추계위원회 직종별 자문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고 의사, 간호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등 직종별로 각각 설치하되, 1차 연도에는 의사와 간호사 수급추계위원회를 먼저 구성한다. 직종별 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총 13인으로 구성하고 전문가에 7인을 배정해 과반수가 되도록 구성한다.
앞서 정부는 의료계에 여러번 의대정원 문제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고 대학별 증원분 배분과 입시요강 발표 등이 다 마무리된 상황에서 재논의가 불가능하지만 추후 증원 폭에 대해서는 의료계의 입장을 듣겠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징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여당과 야당, 정부와 의료계를 모두 아우르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의정갈등을 촉발시킨 의대증원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당시에도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의 철회가 필요하고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입장은 의정갈등 초반에 매우 강경한 입장에서 최근에는 유화적인 모습까지로 계속 변화를 했지만 결국 정부도 의료계가 원하는 2025학년도 의대정원 확대의 철회에서는 1보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해당 이슈에 대한 양보를 할 경우 의료개혁의 핵심 쟁점인 의사 수 부족을 인정하는 형태가 되기에 의료계도 절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최안나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지난 2020년 '9·4 의정합의' 당시 정부가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먼저 어겼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비극이 생긴 것이고, 정부가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 신뢰회복에 나서야 이번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준비 없는 정책으로 의대교육이 파탄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정부는 2025년도 의대 증원은 논의할 수 없다는데 의제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하면서 "정부는 2026학년도부터는 유예가 아니라 의대정원을 감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이에 따른 의료 수요의 급증, 필수 및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1만명을 늘린다는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면서 애초에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만들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정갈등이 7개월이 넘은 상황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 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 이 같은 기구를 만들어 대응했다면 의정갈등의 수준을 더 낮출 수 있고 의료계와 대화를 할 여지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한편 정부는 오는 18일까지 인력수급추계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을 의사단체로부터 추천받아 위촉하는 등 의료계의 입장 변화를 기다릴 계획이다. 또 위원회의 추계작업 실무를 지원하기 위한 추계기관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내에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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