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현 금융부장 마켓부문장
"이상합니다. 밸류업에 큰 관심이 없다는 곳도 들어갔는데."
9월 24일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자 증권·금융업계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SK텔레콤 등 당연히 지수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던 종목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은행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홍콩계 CLSA는 리포트에 "I am really lost for words", 스위스계 UBS는 "Is this a true representation of Value Up Index? NO!!!"라고 썼다. '밸류업'이 아니라 '밸류다운(Value Down)'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국내 주식의 저평가 이유로 꼽히는 낮은 주주환원율이다. 시장에서도 지금껏 주주환원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에 나서고 있는 은행주들은 밸류업 지수에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기업가치 제고계획 조기 공시에 따른 특례편입(신한금융·우리금융지주)이 아니었다면 은행주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KB금융은 올해 2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계획이 나온 이후 줄곧 수혜주로 첫손가락에 꼽혀왔다. 5월 말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기업가치 제고계획' 예고공시를 했고, 10월에는 본공시를 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편입종목에서 제외됐다. 투자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는 이유다. "주주가치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 계획을 모두 갖추고, 주주와 꾸준히 소통해온 은행주들이 배제된 것은 밸류업 지수를 만든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크다.
거래소가 제시한 밸류업 지수 편입요건은 시장대표성(시가총액)과 수익성(당기순이익), 주주환원(배당 지급 및 자사주 소각 여부), 시장평가(주가순자산비율), 자본효율성(자기자본이익률) 등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배당 여부만 따졌을 뿐, 배당수익률이나 배당성향은 묻지 않았다. 배당의 질적인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편입종목 가운데 배당수익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절반 이상이고, 배당성향이 20%를 밑도는 곳도 절반을 넘는다. 반대로 배당수익률이 5%를 웃도는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주들은 고배를 마셨다.
'최근 2년 합산 흑자기업' '최근 2년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 상위 50%' 등 '과거'에 지나치게 매여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KB금융 등은 다른 요건들을 준수하게 만족시켰음에도 2022~2023년의 PBR이 낮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은행주의 저평가가 두드러진 시기였다. 당초 시장에서 '저PBR주=밸류업 수혜주'로 부각될 만큼 PBR 1배 미만의 저평가 종목들이 주목받은 것과도 배치된다. 이번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 가운데 17개는 PBR이 4배가 넘는다.
기업의 '성장성' 역시 고려대상에서 빠졌다. 올해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역성장이 전망되는 기업이 17개사이고, 성장률이 20%를 밑도는 종목 수도 42%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정작 편입요건을 무시한 사례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2년 합산으로 영업손실을 냈고, 기업가치 제고계획도 공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당히 편입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거래소 측은 "지수 운영위원회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이럴 거면 편입요건이 왜 존재하느냐"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사실 '기준'이라는 게 모든 참여자를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참여자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추진할 동력이 생기는 법이다. 가뜩이나 기업가치 제고계획의 공시 참여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등 후속작업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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