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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로스쿨과 의대증원

[강남시선] 로스쿨과 의대증원
정인홍 정치부장
"과거 정부에서 로스쿨 도입 당시 변협 등 관련 기관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많았다. 특히 로스쿨 도입에 따른 적정 연간 법조인 증원 규모를 정하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2000년대 초반 로스쿨 도입 당시 핵심 실무를 담당했던 전직 정부 고위관료의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연간 변호인 배출 적정 규모를 산정하는 부분이었다.

우선 변호사 1인당 연간 평균 수임건수와 수입(연봉)부터 들여다봤다고 한다. 어느 직군이건 상위와 중위, 차상위 그룹이 존재한다.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기능, 전문성, 고도의 직업 윤리 등을 감안했다. 또 국세청을 통해 변호사 직군이 매달 쓰는 비용, 세금 등 각종 증빙자료가 포함된 지출부분도 세심하게 살펴봤다. 졸업생 현황과 우리나라 인구 구조도 따졌다. 변호사 증원 이슈는 해당 직군과 연동된 변리사, 노무사, 행정사 등 다른 직역과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각 대학의 정원 확대, 인가 대상 선별 기준 및 규모와 이에 따른 예산 지원도 검토됐다. 이쯤 되면 아주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이렇듯 다양한 객관적 변수들을 망라해서 나온 연간 적정 증원 규모는 대략 1500~2000명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고 한다.

다만 수험생을 비롯해 현업 변호사 업계, 국민 등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렸다. 당연히 변협 등 이해관계가 직결된 단체들은 극렬히 반대했다. 변협은 정부가 동원한 다양한 '변수'를 적용한 전제조건부터가 잘못됐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정부로선 다양한 객관적인 지표를 동원해 도출한 합리적 결과물인 만큼 변협 측에 반대 논거를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른바 '밥그릇'과 직결된 문제라 늘어나는 변호사 숫자만큼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며 반대했던 변협 측에선 그 나름의 계산법을 토대로 '대안'도 내놨다고 한다. 아예 갈등을 조율조차 않는 지금의 의대 증원 이슈와는 완전 딴판이다. 당시 사법개혁위원회에선 법무부, 변호사회, 학계, 정치권 등이 치열하게 논쟁을 이어갔다. 논의 끝에 적정한 단계적 증원 규모가 나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로스쿨 제도는 정상 시행됐다. 1990년대 수백명에 불과하던 변호사의 연간 배출 규모는 약 20년이 지난 올해 기준 1600~1700명 선으로 확대됐다.

현재 의대 증원 규모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 장기간 갈등을 빚으며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도 사실이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산출 근거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는 그 나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다양한 연구 등을 통해 나온 숫자라는 입장이다. 둘 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자면서도 정작 테이블은 걷어차고 있다. 서로 간 대화 참여 '부대조건'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자면서도 정작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이미 2025학년도 수시 모집이 끝나 되돌릴 수도 없다.

게다가 같은 식구인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의대 증원 이슈를 놓고 내분 양상을 띠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수차례 독대를 신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겸상'을 아직까지 윤허하지 않고 있다.

원래 야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회동을 요청해 각종 정치현안을 논의하는 '영수회담' 논란이 여권 내에서 벌어지는 어정쩡한 상황도 나왔다.
최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는 의대 증원 과정에서 의료계 입장과 요구를 더 폭넓게 수용하기 위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신설 카드를 내놨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답답한 건 국민이다. 꼬인 실타래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응급의료 체계 부실 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만나 각자의 '정밀한' 증원 규모 산출 방정식을 놓고 진정성 있는 타협에 나서라고 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haeneni@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