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속에 70달러 초중반 머물러
투자시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 대신 석유시설 타격으로 보복 예상
세계 6위 산유국 이란에서 생산 차질 우려, 유가 80달러 넘길 수도
OPEC 등 다른 산유국에서 증산하면 피해 줄일 수 있어
사우디의 OPEC '기강 잡기' 주목해야, "유가 50달러" 위협
지난 2005년 7월 25일 걸프만에서 촬영된 이란 석유 시설에서 이란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 충돌 가능성이 증폭되면서 현재 배럴당 70달러 중반인 국제 유가가 80달러 이상 오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다른 산유국의 증산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실력행사’ 같은 변수가 많다고 지적했다.
친(親)이란 헤즈볼라와 격렬한 지상전, 이란 석유시설도 위험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발표를 인용해 지난달 30일 시작된 레바논 지상 작전에서 총 8명이 전사했다고 전했다. 같은날 사흘째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고 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 전차 3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이달 2~3일 사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인근에 연달아 공습을 가했으며 이란을 향한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은 지난 4월에 이어 이달 1일에도 이스라엘을 향해 181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4월 당시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6일 뒤에 이란 본토에 보복을 가했다. 당시 이란의 피해는 미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일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고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2일 국제 석유시장 관계자들을 종합해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생산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일평균 360만배럴로 미국(1290만배럴), 러시아(1010만배럴), 사우디(970만배럴) 등에 이어 세계 6위였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탈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원자재 전략 대표는 "국제적으로 이번 전쟁에 대한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이란의 석유 생산이 위험해지는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CNBC에 출연한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 잭 제이컵스는 이스라엘에서 "지금 실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 핵 시설은 단단해서 파괴하기 어렵다면서 핵 시설 타격의 경우 이란이 더 큰 탄도 미사일을 동원할 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스라엘 입장에서 더욱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날 RBC캐피탈마켓은 투자 보고서에서 "미국 정보 당국은 과거에 이란의 카르그섬 석유 터미널이 잠재적으로 위험하다는 점을 부각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는 2일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보복한다면 이란의 석유 시설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란의 석유 생산 능력을 떨어트리거나 페르시아만의 석유 및 가스 운송선을 공격하는 방법이 예상된다"고 추정했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업체 래피디언에너지의 밥 맥널리 대표는 이란의 피해 정도에 따라 석유 시장의 피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은 현재 일평균 약 180만배럴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며 "수출이 막히면 유가는 배럴당 최소 5달러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널리는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1300만배럴의 석유와 500만배럴의 석유 관련 제품을 위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규모가 확대되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아라드 인근에서 촬영된 이란 탄도 미사일 잔해.AFP연합뉴스
단기적으로 상승 전망, 사우디 '기강 잡기' 변수
2일 미국에서 거래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27달러(0.39%) 오른 배럴당 7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영국의 북해산 브렌트유 12월 인도분 가격은 전장 대비 0.34달러(0.46%) 상승한 배럴당 73.9달러였다. 두 유종 모두 1~2일 연속으로 상승세를 기록했으나 2일에는 상승폭을 줄이면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달 27일까지 1주일 동안 미국의 상업용 석유 재고가 389만배럴 급증한 4억1700만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히며 시장의 공급 불안을 누그러뜨렸다. 같은날 사우디와 이란을 포함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非)OPEC 산유국들이 모인 OPEC+는 화상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연말까지 증산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여 12월부터 1년 동안 일평균 18만배럴을 증산하기로 했다. 일본 미즈호증권 미국 법인의 로버트 야거 에너지 선물 국장은 "OPEC+에 580만배럴의 유휴 생산능력이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해도 그에 따른 틈을 메울 충분한 석유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고 있는 이란이 페르시아만을 봉쇄하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및 기타 산유국의 석유 수출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스위스 UBS은행의 지오반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는 확전 시 실제 OPEC이 증산할 수 있는 양이 추정치를 크게 밑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방 국가들이 전략비축유를 써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2일 영국 지수 및 외환 기업 씨티인덱스의 파와드 라자크자다 시장 애널리스트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를 통해 "중동 갈등이 더욱 고조된다면 앞으로 며칠 안에 유가가 배럴당 5달러 가까이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텔레그래프는 국제 유가가 8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같은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OPEC+의 내부 갈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사우디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주 OPEC+ 회원국들과 회동에서 생산량 제한을 지키라고 강조했다. 현재 경제 개혁에 몰두하고 있는 사우디 정부는 유가 부양을 위해 생산량을 제한하고 있지만, 다른 회원국의 증산 요구로 인해 조금씩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카자흐스탄 등 일부 회원국들은 OPEC+에서 정한 생산량을 넘겨 석유를 뽑아내고 있다. 관계자에 의하면 사우디의 빈 살만 장관은 지난주 회의에서 특정 회원국들이 생산량 제한을 지키지 않으면 사우디가 나서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낮추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WSJ는 사우디가 계획한 경제 계획을 마치려면 유가가 배럴당 85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지난 6월 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석유 관련 행사에 참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타스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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