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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이렇게…미국 쌈 싸 먹는 네타냐후

바이든, 네타냐후에 쩔쩔 매
네타냐후, 바이든과 평화 합의 뒤 곧바로 도발
해리스 대선 패배 우려 속에서도 네타냐후에 끌려다녀
네타냐후, 다음 미 정부에서도 우위 지속할 전망

[파이낸셜뉴스]

외교는 이렇게…미국 쌈 싸 먹는 네타냐후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7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해 바이든까지 미 대통령 5명을 자신의 뜻대로 요리하며 중동지역에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P 뉴시스


“누가 여기서 빌어먹을 슈퍼파워인 거야?”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996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첫 공식 회동한 자리에서 보좌관을 향해 뒤돌아보며 이렇게 물었다.

초강대국 미국 앞에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노련한 외교술은 이후 미 대통령이 4명이 바뀌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았다.

FT는 이날 장문의 분석 기사에서 네타냐후가 웬만한 미 정치인들보다 워싱턴 정계 흐름에 더 정통하다면서 미국을 요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슈퍼파워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서는 이스라엘이 슈퍼파워라는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만 봐도 쉽사리 알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엄청난 비난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했다. 미국의 위신과 체면이 크게 손상됐지만 중동 수렁에서 빠져나오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엮이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바이든은 지난해 10월 7일 가자 지구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하면서 가자 전쟁이 시작되자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전쟁 이후를 목표로 했다.

조속히 휴전해 전쟁을 끝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 체제로 가자는 것이 바이든의 제안이었다.

네타냐후는 이 제안을 가볍게 묵살했다.

가자 전쟁은 휴전 제안이 나온 지 반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전쟁은 확대되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관 출신인 알론 핀카스는 “네타냐후는 워싱턴 게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부분 미 정치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면서 “네타냐후는 바이든을 찜 쪄 먹고(running rings)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의 승패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중동전 전방위로 확전


네타냐후는 바이든의 가자 전쟁 휴전 제안을 묵살한 뒤 곧바로 레바논 ‘정리’에 나섰다.

이른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긴장 고조(escalate to de-escalate)’ 전략이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동원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에 폭탄을 설치하는데 성공했고, 이들 폭탄이 동시에 터지면서 레바논 공습을 시작했다.

2006년 레바논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가자 전쟁을 제외하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더 많은 폭탄을 레바논에 떨어뜨렸다. 3주가 채 안 되는 공습 기간 레바논 사망자 수만 1만명에 육박한다.

네타냐후는 공습을 시작으로 이제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으로 헤즈볼라 세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바이든이 레바논 휴전을 중재하던 와중에 이번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 충돌 직전이다.

네타냐후의 레바논 공습으로 이란의 가장 강력한 이 지역 대리인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하자 이란이 보복에 나선 것이다.

네타냐후는 이것도 계산에 넣었을 수 있다.

이란이 1일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 180발을 발사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철의 지붕’ 아이언돔을 뚫고 핵심 시설 근처에 떨어졌다.

네게브 사막의 F-35 공군기지 인근과 텔아비브 모사드 본부 인근에 이란 미사일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중동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이번에도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했다.

중동 지역에 알 박기 해놓은 미국의 지상 항공모함인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4만 미군과 항공모함 2척이 주둔한 중동 지역에 추가로 병력을 보냈다.

바이든은 지난 4월 인명 피해 없이 끝난 이란과 이스라엘 교전처럼 이번에도 이스라엘에 제한적인 이란 공격만 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미 대선, 관심 없어”


그러나 네타냐후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그런 네타냐후에게 계속 끌려다니고 있다.

바이든은 3일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을 공습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재 이 문제를 네타냐후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석유 시설 공습을 받아들였음을 시인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공습이 유가를 큰 폭으로 끌어올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을 공습할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좀…”이라며 말을 흐렸다. FT는 석유 시설 공습이 초래할 긴장 고조가 다음 달 대선에서 해리스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는 말을 바이든이 차마 하지 못했을 것으로 유추했다.

미 대선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엄청난 변수이지만 결정권은 바이든이 아닌 네타냐후에게 있다.

바이든이 사적으로 종용한 말들은 가볍게 무시하는 네타냐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 바이든은 그저 지켜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 외교장관을 지낸 마르완 알무아셔르 카네기평화재단 펠로우는 “네타냐후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면서 “네타냐후는 해리스의 선거 전망에 도움이 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로서는 이스라엘의 호전성에 반감을 갖고 있는 해리스보다는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이 더 낫다.

트럼프 사위이자 중동 특사를 지낸 재러드 쿠슈너는 이참에 이스라엘이 이란 정권을 끝장내도록 미국이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네타냐후가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물론이고 미 민주당도 네타냐후에 끌려다니고 있다.

유대계로는 미 정치권 최고 자리인 상원 원내 대표에 오른 척 슈머(민주·뉴욕) 상원 의원은 3월 네타냐후 축출이 이스라엘에 최대 이익이라며 네타냐후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2주 뒤 이란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16명이 사망하면서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을 촉발한 뒤에는 꼬리를 내렸다.

네타냐후는 7월 미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초대돼 연설했고, 52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 슈머 원내 대표도 기립 박수를 한 의원 가운데 한 명이다.

교도소행 피하는 카드


네타냐후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묘히 활용하면서 중동전 확전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그의 범죄 혐의도 있다.

네타냐후는 현재 총리로 수많은 사건 기소중지 상태에 있다. 총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재판정에 세워져 교도소로 직행할 수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온갖 정치적 고비를 뚫고 다시 확실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교도소행을 미루고 있다.

워싱턴 중동연구소 부소장 폴 샐럼은 “네타냐후가 9개 목숨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이제 보니 그는 뒷주머니에 목숨 여럿을 더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네타냐후가 좌충우돌하며 전쟁을 키우는 가운데 최근 여론 조사에서 그의 리쿠드당은 지금 당장 조기선거가 치러질 경우 최대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네타냐후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바이든이 제안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체제는 이스라엘 유권자 절대다수가 반대하고, 이제 팔레스타인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바이든의 중동 특사를 지낸 제프리 펠트먼은 네타냐후가 전쟁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면서 이는 그가 형사범죄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교도소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교도소 안 가기 카드’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스라엘 외교관 출신인 핀카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네타냐후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핀카스는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가 지금 가을로 접어들면서 조금 축축한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아니다. 이건 계절 탓이 아니다. 네타냐후가 여러분 머리 위로 오줌을 갈기고 있는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