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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민원 500건' 임산부 배려석… "그냥 서있으렵니다"

따뜻함이 필요한 '임산부의 날'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도입 10년
여전히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임산부도 불편한 '지정 배려석'
"일어나라고 압박하는 것 같아
근처에 가는 것조차 괜히 눈치"
"문 옆자리라 누구나 쉽게 앉아"
"양보를 강요하나요" 반문도

'한달 민원 500건' 임산부 배려석… "그냥 서있으렵니다"
지난 9일 지하철 1호선 내 임산부 배려석에 일반 승객들이 앉아 있다. 사진=서지윤 수습기자
10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 이날은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제정된 '임산부의 날'이었지만,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은 대부분 일반 승객이 차지하고 있었다. 임산부가 아닌 한 여성은 임산부석에 앉아 핸드폰을 쳐다봤고, 다른 남성은 빈 좌석이 있었음에도 임산부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날 2호선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50석 중 실제 임산부가 앉아 있는 좌석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이 때문에 만원 지하철에 탄 일부 임산부들은 가방에 달린 임산부 배지를 눈에 잘 띄도록 위치를 조정하기도 했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지난 2013년 서울시의 여성정책 일환으로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고 임산부 배려 문화를 확산하고자 서울교통공사가 서울 지하철 전체 좌석 중 일부를 임산부용 좌석으로 지정하면서 도입됐다. 이후 배려석은 전국으로 확산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임산부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좌석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본지가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총 4668건 접수됐다. 여전히 한 달에 500건가량의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이 접수되는 셈이다.

현재 서울교통공사는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를 권장하고 있다. 임산부가 좌석에 언제든지 편하게 앉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 초 임산부와 일반인 각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해 본 86.8% 임산부 중 42.2%는 '이용이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임산부들 역시 지하철 내에서 임산부석에 앉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임신 7개월차인 이모씨(35)는 "지금까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게 손에 꼽는다"며 "출퇴근 시간에는 이미 누가 있어 앉기란 불가능이고, 좌석이 비어 있던 적도 많이 없는 데다가 괜히 근처에 가면 일어나라고 압박하는 것 같아 더 멀리 서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임신 5개월차 임모씨(38) 역시 "임산부 배려석이 가장자리에 있어서인진 몰라도 배려석부터 앉는 경우도 종종 봤다"며 "좌석이 비어 있지 않는 한 임산부들이 앉기는 어려운 게 현실인데, 좌석이 빈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임산부석이 '배려석'인 만큼 비워두기나 양보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앉아 있다가도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임산부들은 이미 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양보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임신 6개월차 유모씨(31)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주변을 보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보고 있어 양보를 요청하기도 어렵다"며 "그렇게 해본 적도 없고 그냥 차라리 서서 가는 게 마음 편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임산부를 포함해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문제임에도 정작 필요한 지원에 대해선 인색한 분위기가 있다"며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