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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강의 노벨문학상 큰 획, 문화 넘어 기초과학으로 뻗어가야

[fn사설] 한강의 노벨문학상 큰 획, 문화 넘어 기초과학으로 뻗어가야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23년 역사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작가로는 아시아 최초다. 예상치 못한 수상에 놀랍고 더 반갑기까지 하다. 한국 문화의 쾌거이자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10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다.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는 한강은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담담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적 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소설 '채식주의자(영어판 제목 The Vegetarian, 2007)'로 먼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지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한국 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 쾌거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의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은 'K컬처'로 통칭되는 영화·드라마, 노래 등이 세계의 주류가 됐다. 그러나 한글로 쓴 문학은 언어의 장벽이 높아 다른 문화 콘텐츠에 비해 전달의 한계가 존재했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 한국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야말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일본문학에 비해 변방 취급을 받았던 한국문학의 풍부한 감성과 가능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등과 같이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을 담은 우리의 축적된 문학의 힘이 1970년대생 젊은 작가 한강을 길러낸 것이다.

한강의 작품 세계는 독창적이다. 어둡고 아픈 현대사와 교차하며 인간 내면을 깊이 응시하는 힘이 있다. 죽음과 폭력, 인간애를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낸다. '소년이 온다(2014)'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이며 치유하지 못한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았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세 여성의 시선으로 이념에 짓밟힌 민초의 삶,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그렸다. 한강은 제주에서 살면서 4·3 사건의 증언을 모으고 이야기를 연결했다.

한국 문학은 한반도를 넘어 이제 세계인이 공감하고 치유받는 문학으로 승화했다. 한글 작품을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옮겨 작가의 정신세계와 감동을 되살리는 번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묻힐 뻔했던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겨 생명력을 되살린 젊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그 역할을 했다. 이런 한국 문학 번역가는 소수다. 서구권에서는 영화와 K-팝과 달리 한국 문학이 변방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문학은 세계에 덜 알려진 숨겨진 보고와 같다. 한국문학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양질의 번역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우린 스마트폰과 SNS 홍수 속에 청소년들과 기성세대 할 것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우리 문학도 쇠퇴하고 소멸하고 있다. 이런 문학의 침체 속에 한강의 수상은 우리의 글과 문화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한강은 올 봄 삼성호암상을 수상하면서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 한다"고 했다. 영광은 서두르기만 한다고 결코 거머쥘 수 없다.
한곳을 천착하며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이룰 수 있다. 문화이든 과학과 기술이든, 축적의 힘은 그렇게 나온다. 한국인의 창의성과 우수성이 문학을 넘어 노벨상 불모지인 기초과학 분야로 힘차게 뻗어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