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천 생활경제부장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질주 중이다. '밤 티라미수' 등 경연에 등장했던 요리들은 식품·편의점 업계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흑수저 신분으로 우승한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를 비롯한 인기 요리사들은 팬덤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권 셰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파스타 식당은 지난 10일 예약시간에 맞춰 11만명 넘는 이용자가 몰렸다. 20여분간 예약 앱이 마비될 정도였다.
요리와 경연이라는 식상한 소재에도 대흥행을 거둔 비결은 뭘까. 우선 독특한 대결구도를 들 수 있다.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계급구조부터 신선했다. 상대적으로 무명인 흑수저 요리사들이 유명 백수저 요리사를 이기면 시청자도 쾌감을 느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클리셰를 과감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실험한 것이다. 권위나 서열에 도전하려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적중했다.
공정성과 신뢰성의 확보도 빛을 발했다. 심사위원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오너 셰프인 안성재씨는 본선부터 눈을 가린 채 '블라인드' 심사를 진행했다. 여경래, 최현석 같은 기라성의 셰프들에 대한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의 끈이 마지막까지 유지됐다.
실력 중심의 경연 이미지에 집중한 것도 통했다. 예선부터 최종 결선까지 오로지 맛과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반엔 백수저들의 우위 구도로 진행되는 듯싶더니 어느새 흑수저의 쿠데타가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인물 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미슐랭 3스타인 안성재 심사위원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최현석 셰프는 시종일관 보이지 않는 신경전으로 시청자를 긴장시켰다. 요식업의 대가 백종원과 파인 다이닝을 대표하는 안성재의 상반된 캐릭터도 심사마다 몰입도를 높였다.
개인적으로 흑백요리사의 최대 서사는 리더십 관전이었다. 흑과 백의 요리사가 뒤엉킨 팀전은 리더십 경연장이었다. 최현석 셰프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저를 믿으세요"라는 특유의 말을 내뱉으며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 경연요리 선정부터 업무 분담, 요리 완성까지 흔들림 없이 지휘했다. 물론 그의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겠지만 솔선수범과 빠른 의사결정은 팀원들의 신뢰를 단숨에 확보했다.
흑수저팀을 이끈 '트리플 스타' 강승원 셰프는 MZ 리더의 표본이었다. 30대 초반임에도 대선배들과 까다로운 셰프들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개성이 강한 팀원들의 역량부터 파악하고 적절한 역할을 나눠줬다. 개인전에서 보였던 우승의 욕심은 감추고 철저하게 팀원 중심의 '조율자' 역할을 자처했다. 또 중간점검과 빠른 피드백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명확한 목표 설정과 방향성 제시, 효과적 타임라인 관리, 동기부여와 인정.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리더십의 답안지 같았다.
반면 조은주 셰프는 상대적으로 리더십의 한계를 보였다. 팀원들의 의견 경청에 치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청은 좋았지만, 명확한 방향 제시가 부족해 팀 전체의 의사결정은 매번 지연됐다. 이 때문에 팀 내 혼란이 발생하고 시간과 리소스는 낭비됐다. 리더십의 결과는 그대로 승리와 패배로 이어졌다.
세계적 경영 교육자이자 작가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미래의 리더는 동료들보다 더 유식한 전문가가 아니라 동료들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촉진자"라고 정의했다. 또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독특한 공헌을 존중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성공하는 리더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을 빗대자면 트리플 스타, 강승원 셰프가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지켜보는 내내 나는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인지를 성찰하게도 만들었다. 많이 바꿨다고 생각하지만 '꼰대'이자 '답정너'인 리더는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처럼의 웰메이드 작품 덕분에 눈과 귀의 호강뿐 아니라 자성의 기회까지 갖게 됐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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