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없는 '내부고발 제도'
"되려 인사 불이익 받을까" 염려 커
포상금 등 인센티브 지급도 저조
美·英 참고해 제도 개선 나서야
/사진=연합뉴스.
은행원이 꼽은 횡령, 비리 등 금융사고 원인 |
(중복 선택 허용) |
사고 원인 |
응답 수 |
은행원 개인의 일탈 |
86명 |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 |
55명 |
성과(KPI) 중심 문화 |
31명 |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 |
26명 |
수직적인 조직문화 |
12명 |
동료간의 신뢰 부족 |
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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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100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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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이 꼽은 금융사고 방지책 |
(중복 선택 허용) |
방지책 |
응답 수 |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강화 |
53명 |
인사상 불이익이 없도록 내부 신고 채널 개선 |
51명 |
순환근무, 명령휴가제 등 개선 |
38명 |
투명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
33명 |
윤리 교육 강화 |
2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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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100명 대상 본보 설문조사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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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반복되는 금융사고를 차단하기 위해 은행원들은 '내부고발자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내부고발자 제도가 충분히 신고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 '말 못하는' 은행원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포상금과 형식에 불과한 내부고발자 보호제도가 '알고도 눈 감는' 은행 내부문화 조성에 기여한다는 지적이다.
■'배신자' 낙인 공포
22일 파이낸셜뉴스가 현직 은행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행원들은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부고발자 보호제도'(53명)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특히 1년차 이상부터 20년 이상의 은행원이 연차와 관계없이 모두 내부 소통채널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11년차 은행원 D씨는 "투명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원들은 현행 내부 고발제도가 미비하다고 토로했다. '안전' 여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은행원 51명은 금융사고 방지책으로 '인사상 불이익이 없도록 내부 신고채널 개선'을 꼽았다. 은행 내 '안전한 내부고발 채널'에 대한 갈증이 표출됐다. 시중은행에서 16년 동안 일해온 40대 남성 A씨도 "현재의 내부 고발 프로세스가 불투명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내부고발제도가 뿌리내린 선진국과 비교할 때 더 두드러진다. 영국에서 금융서비스 관련 위반 행위를 금융감독청(FCA)에 직접 신고하면 신원을 보호받을 수 있다.
이 때 신고자에게는 FCA 내부고발팀의 전담직원이 담당관으로 배정된다. 형식상 '안전한' 신원보호가 보장되는 구조다. FCA는 지난 2016년부터 금융회사 내에 내부고발자의 피해 방지를 위한 내부고발자 보호관도 임명하고 있다. 이에 영국 내 내부고발 청구건수는 2014~2015년 1395건에서 2020~2021년 3128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에 은행 특유의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해결돼 내부고발제도가 활성화돼야 금융사고가 근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별 조직문화가 금융사고 발생과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은행원이 22명이나 됐다. ‘그렇다’고 답한 38명을 합치면 은행원 10명 중 6명이 조직문화가 금융사고와 관련히 깊다고 판단함 셈이다.
법무법인 지평의 민창욱 변호사는 "내부고발자는 자신의 신원의 노출되거나 보복 또는 2차 피해가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제도적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 내부고발 시스템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인센티브 지급은 11년간 단 1건
은행들이 실시 중인 내부고발에 따른 포상금 제도의 경우 실제로 지급되는 경우가 극히 적다. 불이익을 감수하며 신고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로 작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내부고발자의 신고를 받아 금감원에 즉시 보고한 금융사고 건수는 총 19건으로, 이 가운데 은행에서 내부고발 직원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본지가 5대 은행에 문의한 지난해 내부고발자 신고 및 포상금 지급 현황에서도 NH농협은행(1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4대 은행은 보상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내부고발에 대해 최대 10억원의 포상급 지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3년차 은행원인 20대 B씨는 "회사 차원에서 내부 고발에 대해 '눈 감는 것' 이상의 물질적이고 체계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에서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지난 2010년 내부고발자가 제공한 정보에 의해 위반자에게 100만달러 이상의 금전적 제재가 부과되는 집행조치가 이뤄질 경우 총액의 한도 없이 추징된 과징금의 10~30%에 해당하는 금액을 포상금으로 지급키로 했다.
이에 328명의 개인에게 약 13억달러 이상의 포상이 지급되는 등 인센티브가 효과적으로 자리 잡았고, 내부고발 제보 건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며 지난해 10월 기준 1만8000여건에 달했다.
은행원들은 내부고발제가 자리잡는 등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원할히 이뤄질 경우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금융사고 예방에 얼마나 기여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여한다' 혹은 '매우 기여한다'는 긍정응답이 66명에 달했다. '기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6명에 그쳤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행 포상금 제도 하의 금액 수준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신고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로 작동하기에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향후 금융당국은 포상금 제도의 점진적 보완을 통해 사전적인 보상을 강화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장치를 마련하여 유의미한 제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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