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조선시대에는 동물의 가죽으로 털모자를 만들거나 담병에 붙이기도 했다. 좌측 그림은 19세기에 그려진 풍속화로 <풍차를 쓰고 있는 남자>다. 풍차(風遮)는 털모자로 휘항(揮項)이라고도 해서 일반 백성들은 고양이 가죽으로도 만들었다. 우측은 조선 영조 때 활동한 화가 변상벽이 그린 <묘작도(猫雀圖)>다.
영조는 재위 기간 중 어깨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평상시에도 사저에 있을 때부터 아팠던 어깨는 어느 때부터인가 고질병이 되었다.
영조 13년 43세가 되는 어느 해 봄, 용포를 입는 도중에 왼쪽 팔을 들어 용포에 넣으려는 순간 어깨가 심하게 결리듯이 아팠다. 심한 통증은 한참 만에 풀렸으나 결리는 듯한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조는 자신의 증상을 의관들에 일러 상의를 했다. 의관들은 담병(痰病)으로 진단을 하고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다. 담병은 관절과 근육이 뭉치면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의관들은 가장 먼저 어깨에 뜸을 뜨고 침을 놓았다. 그러고서는 무엇보다 환부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깨관절이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온열치료가 중요했다.
도제조 김흥경이 “담병에는 묘피(猫皮, 고양이 가죽)가 매우 좋으니, 신도 누차 시험해 보고 효과를 보았습니다.”라고 하자, 영조는 “다른 동물의 가죽도 꺼려지는데, 하물며 고양이 가죽은 누추해서 가까이할 수 없겠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동물의 가죽으로 털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특히 남자용 털모자를 풍차(風遮)나 휘항(揮項)으로 불렀다. 양반이나 관료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담비나 붉은여우 가죽으로 만들었고, 일반 백성들은 개나 고양이, 토끼 가죽으로 만들었다. 일반 백성들은 담이 결릴 때 고양이 가죽을 붙이기도 했는데, 다만 고양이 가죽은 신분이 낮은 백성들의 것이었다.
김흥경은 재차 “묘피가 비록 보잘 것은 없으나 만약 속옷에 붙인다면 반드시 신통한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다시 한번 청했다.
그러자 영조는 단호한 어조로 “고양이 가죽과 개 가죽이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느냐? 이것은 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좌의정 김재로가 “중국에서 들여온 당묘피(唐猫皮)가 특히 좋습니다.”라고도 했지만, 영조는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영조는 의관들이 제안한 방법 중에 먼저 황랍병(黃蠟餠, 밀랍과 남성가루를 뭉쳐서 만든 떡)으로 찜질을 했다. 또한 담병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 해서 풀솜인 설면자를 뭉쳐서 환부에 붙었다. 의관들은 지속해서 병변 부위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상가상 날씨는 점차 더워지기 시작했고 영조는 체질적으로 열이 많아 이조차도 힘들어 했다.
이제는 붓글씨를 쓰려고 할 때 마비감까지 생겼다. 영조는 붓으로 글씨를 한두 줄 쓰고 나면 붓을 다시 내려놓기 일쑤였다.
의관들은 “묘피가 마땅하지 않다면 이보다는 못하지만 초피(貂皮, 담비 가죽)도 좋습니다.”라고 하면서 담비 가죽을 솜으로 만든 반팔에 붙여서 올렸다.
다행히 궁에는 얼마 전 중국에서 보내 준 담비 가죽이 있었다. 더불어 어깨통증에 도움이 되는 탕약과 함께 지속해서 뜸치료와 침치료, 부항치료가 행해졌다. 그러나 영조의 어깨 통증은 조금 완화되는 듯했지만 여전했다.
영조는 다양한 치료에도 어깨 통증이 좋아지지 않자 낙담을 하면서 급기야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의관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영조의 어깨 통증이 차도가 없자 의관들은 또다시 담이 뭉치 증상에는 고양이 가죽을 덮어주면 따뜻하게 하면서 신묘하다고 하면서 청했다. 그러나 영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관들과 신하들은 논의 끝에 임금의 허락을 득하지도 않고 묘피를 올렸다. 묘피 말고는 더 이상 새롭게 적용할 만한 치료도 없었다.
며칠 후 부제조 유엄이 “묘피는 사용해 보셨습니까?”라고 여쭙자, 영조는 “전에 어느 대신이 묘피를 올렸는데, 시험해 보고자 했으나 살펴보니 실제로 볼품이 없어서 사용해 보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때 주청사 서명균과 도제조 김흥경도 자신들의 경험을 전하면서 묘피를 사용해 볼 것을 다시 한번 간곡하게 청했다.
영조는 어쩔 수 없이 “요즘 날이 따뜻해져서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고민해 보겠다.”라고 했다. 신하들이 물러갔다.
다음 날, 초여름 하늘은 청량하고 볕이 좋았다. 영조는 후궁에서 산책을 했다. 그때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궁궐의 담벼락 위를 오가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들은 영조를 보고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듯하더니 영조를 빤히 쳐다보며 응시했다. 마치 ‘당신이 주인이요? 허락한다면 여기서 좀 놀아도 되겠소?’라고 묻는 것 같았다.
영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옛시에 ‘궁중에서 높은 상투를 좋아하니, 사방의 상투가 한 자나 높아지네’라고 하였다. 내가 만약 어깨의 담병에 고양이 가죽을 사용하면 그 폐단이 막대하여 장차 계속 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양이를 잡아 조선 땅에 고양이가 장차 멸할 것이다. 내 어깨의 담병을 치료한다고 차마 고양이 가죽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이 역시 포주(庖廚)를 멀리하는 마음일 것이다.”라고 했다. 영조 바로 뒤에 서 있던 상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자>에 보면 제나라 선왕이 제사 희생으로 끌려가는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서는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차마 살아있는 동물이 눈 앞에서 죽는 장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한다.
양 또한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양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포주(庖廚, 푸줏간)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영조가 포주(庖廚)를 멀리하는 마음이라고 한 것은 바로 <맹자>에 나온 ‘군자원포주(君子遠庖廚)’를 언급한 것이다. 부엌에서도 동물을 잡아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포주는 부엌이란 뜻으로도 사용된다.
영조는 상선을 시켜 의관들이 올린 묘피를 당장 중관(中官)에서 하사해서 쓰도록 내렸다.
의관들이 이후에도 누차 어깨 통증에 묘피를 덮기를 청했지만 “차마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도 궁궐의 담장 위에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영조가 고양이 가죽을 아픈 어깨에 대고 온열치료를 했을지라도 여전했을 수 있다. 사실 묘피가 담병에 효과가 있다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영조는 어깨 통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여타의 치료법들로 인해서 가을이 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 제목의 ○○○은 ‘고양이’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승정원일기> 영조 13년 1737년 5월 22일. 儼曰, 唐猫皮, 果已試之乎? 上曰, 大臣亦達, 故欲觀猫皮而試之, 觀其皮, 則甚陋, 故不試之矣.昔梁武帝, 溺於左敎, 犧牲不用於宗廟, 已有先儒之定論. 而王者之事, 當詳愼於始, 予以臂痛, 用此猫皮, 使尙方納之, 則閭巷之人, 必以猫皮爲痰病之妙劑, 而皆用其皮。此弊亦甚可慮, 故非但不着, 賜中官矣. 在魯曰, 唐猫皮, 異於常猫皮, 見效之人亦多, 試之, 何如? 上曰, 古人詩云, 宮中好高髻, 四方高一尺. 予若用此猫皮, 則其弊無窮, 將至難繼之境矣. 唐猫皮, 似異於常猫皮. 而予於宮中, 常見群猫之往來於宮墻間, 以遠庖廚之意, 不忍以其皮, 用於痰病也。在魯曰, 聖上好生之德, 至矣. 而但利於病, 則何可不試之乎? 上曰, 不忍爲之矣.(유엄이 아뢰기를, “당묘피는 과연 이미 시험해 보셨습니까?”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신도 진달하였기 때문에 묘피를 살펴보고 시험해 보고자 하였는데, 그 가죽을 살펴보니 매우 볼품없었기 때문에 시험해 보지 않았다. 옛날 양 무제가 좌교에 빠져 종묘에 희생을 쓰지 않았는데, 이미 선유의 정론이 있다. 왕자의 일은 처음에 상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내가 팔뚝의 통증 때문에 이 묘피를 사용하려고 상방으로 하여금 바치게 하였는데, 여항의 사람들이 반드시 묘피를 담병의 특효약으로 여겨 모두 그 가죽을 사용하니 이 폐단 또한 매우 우려할 만하였다. 그러므로 착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관에게 하사하였다.”하니, 김재로가 아뢰기를, “당묘피는 보통 묘피와 달라 효험을 본 사람도 많으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자, 상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시에 ‘궁중에서 높은 상투를 좋아하니, 사방의 상투가 한 자나 높아지네.’라고 하였다. 내가 만약 이 묘피를 사용하면 그 폐단이 막대하여 장차 계속 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당묘피는 보통 묘피와 다른 듯하지만, 내가 궁중에서 궁의 담 사이로 오가는 고양이들을 항상 보고 있으니 푸줏간을 멀리하는 뜻으로 차마 그 가죽을 담병에 쓰지 못하겠다.”하니, 김재로가 아뢰기를, “성상의 살려 주기를 좋아하는 덕이 지극하지만, 병을 치료하는 데 이로우니 어찌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자, 상이 이르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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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휘> ○ 背寒痰也, 時時痛難忍, 痰熱也, 猫皮付之. (등에 한담이 있어 자주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픈 것은 담열 때문이니 고양이 가죽을 붙인다.)
○ 頭風. 冒純黑貓皮, 無不效. (두풍. 완전히 검은 고양이의 가죽을 머리에 쓰고 있으면 효과가 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의방합편> 頭風. 純黑猫皮, 作耳掩, 或作揮項, 長着之好. (두풍. 털이 새까만 고양이의 가죽으로 귀덮개나 휘항을 만들어 오래 착용하면 좋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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