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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한강이 부른 '종이책의 부활'

[강남시선] 한강이 부른 '종이책의 부활'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던 지난 10일 오후 8시. 회사 워크숍으로 인해 경기도 모처에서 다른 사람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한강 작가의 '한국 첫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져서다.

당시 누구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예측하지 못했다. 담당 기자는 수상이 유력하다는 다른 나라 작가의 수상기사를 간략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24년 만에 수상한 두번째 노벨상이라니.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속보기사와 종합기사 처리를 지시하고 문화스포츠부 4명이 달라붙어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시간30분 만에 1면과 2면 지면 기사 3꼭지와 연달아 20여개의 온라인 기사를 쏟아냈다.

정적이기만 한 문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발령난 지 한달 만에 겪게 된 것이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K컬처에 쏟아지는 관심은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잔물결효과처럼 K팝과 영화가 던진 돌이 파동과 함께 문화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인데, 작은 파동으로 느끼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2002년 칸영화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은 후 한국 영화의 국제 영화제 수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음악계에서는 지난 2018년 5월 마지막 주 빌보드 200 차트에 BTS의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이 1위에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K팝 시대를 열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판매실적으로 이어졌다. 한강의 책은 수상 6일 만에 예약판매까지 100만권을 돌파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곧 200만부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출판계에서는 5만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난 것이다. 최근 흥행한 책인 '82년생 김지영'(2016년)도 출간 2년 만에야 누적 판매 100만권을 넘었다. 2020년 이후 출간된 책 중 누적 부수로 100만권을 돌파한 책은 4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던 독자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이들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웹소설이나 웹툰으로 넘어갔다. 무거운 소설책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형태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웹소설 산업 규모는 1조390억원, 모바일 앱을 통한 웹소설 이용자 수는 587만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 웹소설 산업규모는 1조390억원으로, 2020년 6400억원 대비 62% 급성장했다.

웹툰은 더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초 내놓은 '2023 웹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웹툰산업의 총매출액은 1조82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으로 3799억원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책 읽는 학생들은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학생들의 연간 독서량은 지난해 34권으로, 2013년(39.5권)보다 13.9% 줄었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학생 비율은 2019년 43.7%에서 2021년 40%, 2023년 39.6%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한강은 이 같은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한강 작가의 책을 사러 갔다가 다른 책도 함께 구매하는 현상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산 소설 1위는 양귀자 작가의 '모순'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1.1%나 판매가 증가했다.
올해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도 판매가 117배 늘었다고 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촉발된 문학에 대한 관심이 '활자시대의 귀환'을 불러온 것이다. 책에 대한 관심이 단기적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문학시장에 또 다른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ompo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