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상력, 상향식 접근 강조
"사회 맥락 무시하면 실패" 조언도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사회 시스템 전반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해외 인구석학의 경고가 나왔다. 2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저출산·고령화 영향과 해법 국제 세미나에서 스튜어트 지텔 바스텐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은 단순히 당장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의 실패를 알리는 징후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하향식 정책에서 상향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니콜라스 에버슈타드 미국기업연구소 박사는 "인구 감소가 상수가 된 사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전 세계가 출산율 하락현상을 인구구조의 '한국화 (South Koreanification)'라고 부른다고 꼬집었다. 우리의 저출산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 출산억제정책을 권장정책으로 전환한 이후 우리는 100조원 넘는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인구정책의 대실패였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6월 151개의 저출생 대책을 내놓았다. 육아휴직 급여 최대 월 250만원으로 인상, 단기 육아휴직 도입, 출산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우선 입주 등이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민간기업들도 참신한 대책으로 적극 동참하며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올 2월 부영그룹이 출생아 한 명당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한 사례는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출생 통계와 인식조사 등에서도 긍정적 신호가 감지된다. 지난 7월 출생아 수는 2만601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증가 폭(7.9%)이 12년 만의 최대치였다. 올 1~7월 전국에서 12만9000쌍이 혼인신고를 해 1981년 이래 역대 최대 증가율(11.2%)을 기록했다. 30대 여성 10명 중 6명은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청년세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 또한 높아졌다. 추세 전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지만 고무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것은 높은 주거비와 육아비용, 불안한 일자리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 문제는 정책의 실행력이다. 무엇보다 주거안정이 우선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발표한 신혼부부 주택 15만가구 공급은 취소·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일·가정 양립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거비와 일자리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적 현상도 개선해야 한다.
다만 이날 세미나에서 나온 해외 석학들의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토마스 소보트카 비엔나인구학연구소 박사는 "동거 형태가 다양하고, 결혼·출산 간 연계가 약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결혼 이외의 동거 형태가 제한적이고, 혼후(婚後) 출산이 지배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재정지원 정책은 결국 출산율 반등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개별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고려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돈만 쏟아붓다가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말이다. 세미나에서는 인구 감소가 정해진 미래라면 '누구도 낭비되지 않는'(NOW·No One is Wasted) 사회를 정착시켜 개개인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에 대한 접근이 보장된 포용적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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