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가족' 보도스틸. 연합뉴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화가 있다. 왕년에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명대사로 '멜로영화 거장' 소리를 듣던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가족'이다. 개봉 3주 차에 접어든 이 영화는 누적관객수 50만명을 모았을 뿐이나 포털사이트 평점은 8.16으로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도 자식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요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난이도 최상이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내 자식의 잘못을 덮어줘야 할까, 훈육의 기회로 삼아야 할까? 자식을 어디까지 보호하는 게 사랑일까. "객관적 시선으론 정의의 편인데 가족 일이 되면 속단할 수 없다"는 감상평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자식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속담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변호사 재완이 난폭운전으로 시비가 붙어 한 가족의 일상을 파괴한 유력 집안의 망나니 아들을 변호하면서 시작된다. 동생 재규는 물질만능주의 형과 달리 '정의와 도덕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좋은 의사이나 은근히 선민의식에 젖어 있다. 형제는 청소년 자식을 뒀다. 재완의 딸은 해외 명문대에 갈 정도로 똑똑하나 속물 어른 못지않게 맹랑하다. 반면 뒤늦게 학군지에 입성한 재규의 아들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 사촌지간인 둘은 부모가 부재한 어느 밤, 술을 마시는 일탈을 하고 급기야 노숙자를 때려 상해치사에 이르게 한다.
결말도 충격적이지만, 영화에는 섬뜩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아이들의 도덕성 지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유력 집안 망나니 아들은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를 하라는 재완의 조언에 "그거 하라고 당신한테 엄청난 수임료를 주는 거 아니야"라며 거절한다. 재완의 딸은 사촌동생과 함께 가해한 노숙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죽었다는 아버지의 전언에 "그럼 이제 다 끝난 거 아니냐"고 반문한 뒤 입학 선물을 사달라고 한다. 재규의 아들은 자신의 죄를 부인하다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나 진심인지 의심되는 녹취록이 발견된다.
같은 사건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던 형제는 일련의 사건을 겪다 결국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한 사람은 지금이야말로 자녀 교육의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하나, 그 의견은 다른 이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사회 각 분야의 도덕불감증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도덕성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고 했거늘 결과적으로 내 자식을, 우리 사회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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