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째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용자 교화
사람은 누구나 실수…관심 갖고 새 삶 인도
국내 첫 선화 인간문화재, 교도소 작품 기증
제79주년 교정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성각스님(맨 왼쪽)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망운사 제공
[파이낸셜뉴스] 경남 남해 망운사 주지 성각스님이 제79주년 교정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아 화제다. 교정대상 시상식은 수형자 교정교화와 교정행정 발전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온 교정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을 포상·격려하기 위해 정부가 1983년부터 해오는 것으로 올해 행사는 지난달 28일 과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성각 스님은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33년간 활동하며 수용자(재소자)와 불자 간의 자매결연, 법회와 명절 차례 등을 통해 긴 세월 이들과 아픔을 함께 하며 안정적인 수용생활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2020년에는 법무부 교정대상 자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각스님이 교도소 수용자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부터다. 당시 마산교도소(지금의 창원교도소) 관계자로부터 교화위원(당시 종교위원)으로 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시작했다. 1995년부터는 진주교도소 교정위원을 맡아 지금껏 수용자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긴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자신도 몰랐다. 첫 만남 이후 33년, 이 긴 시간 동안 성각스님은 수용자를 위한 법회를 주관하고, 부처님 말씀으로 이들을 보듬었다. 망운사 신도들을 교도소에 데려가 수용자들과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영치금을 지원하며 새 삶을 향한 위로와 희망을 전해왔다.
“수용자 법회의 핵심은 심성순화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참된 새 삶을 살아가도록 교화하는 게 목적입니다. 범죄는 탐(貪)·진(瞋)·치(癡)라는 3가지 욕망 때문에 일어납니다. 탐내서 그칠 줄 모르는 욕심, 노여움,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삼독(三毒)이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삽니다.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욕망의 뿌리가 선근(善根)이냐 악근(惡根)이냐에 따라 착하고 나쁘고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착한 뿌리(선근)를 심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보리심(菩提心), 즉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성각스님은 수용자들에게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까지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죄를 짓고 갇혀 있는 수용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도록 온정을 베풀고 보듬으며, 때로는 호통을 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많은 수용자들은 스님을 아버지로 여긴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교정과 교화, 즉 ‘맑은 정신으로 바꾸는 실천’이라 여긴다. 이들과 함께 마음의 뿌리를 착하게 바꾸는 실천의 고행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선서화를 그리고 있는 성각스님. 사진작가 문진우 제공
스님은 2015년 진주교도소에 선서화 작품 24점을 기증했다. 이 그림은 진주교도소 가온길에 전시돼 있다. 가온길은 가운데 길이란 뜻으로 수용자들이 면회를 위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긴 복도 통로다. 수용자와 직원들이 오가며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작품을 내놓자, 진주교도소는 '가온길 갤러리'란 이름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해에는 새로 개청한 거창구치소에도 선서화 작품 11점을 기증했다. 수용자들이 선서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사회에 복귀해 새 삶을 살았으면 하는 성각스님의 배려다. 기증한 선서화는 ‘산’ ‘미소’ ‘사유’ ‘동심의 세계’ 등으로 심성을 순화시킬 수 있는 작품들이다.
성각스님은 부산광역시 무형유산 선화(禪畵) 기능보유자다. 선서화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성각스님이 국내에서 처음이고 유일하다.
그는 “선서화는 선법의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작품을 한 점 그리면 이 작품은 ‘이 뭣고?’하는 화두가 된다. 작품을 보는 사람이 이 화두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방편이 달라진다. 얼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 이것이 선서화의 핵심이고 그래서 선법의 도구다. 붓질 한 획도 예사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님이 그려내는 그림은 절제와 농축의 과정을 거친 명징한 시어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때로는 죽비소리 같은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붓을 잡기 전, 언제나 10여 분 간 참선부터 한다. 번뇌를 털어내고 맑은 선지를 모은 뒤 비로소 먹을 갈고 붓을 잡는다. 마음이 산란하면 붓질에 염원이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고요하고 맑은 새벽 시간을 택해 화선지를 펼친다.
“그림에 염원을 담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고난에서 해탈하고, 걸림이 없고, 자제하며 살아가기를, 또한 집안이 화기애애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지요.”
그림을 보면서 한순간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면 세상을 보는 눈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불가항력으로 부도를 내거나, 욱하는 마음에 순간 판단을 잘못해서 형을 사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비난이나 선입견보다 그들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
성각스님은 날이 갈수록 세태가 각박해지고, 교화 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줄어 안타깝다고 한다. “시간과 돈이 좀 들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소박한 당부의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paksunbi@fnnews.com 박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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