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 참여한 가운데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기대가 크다. 책무구조도는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시 금융사 임원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제도다. 제도가 시행되면 책무가 배정된 임원에게 금융사고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묻게 된다. 최고경영자(CEO)도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린다.
그간 수없이 발생했던 금융사고에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탓에 경영진은 법적 처벌을 피해왔다. 지난 2020년 금융감독원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렸지만 법원이 이를 취소했다.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그 기준을 일부 준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책무구조도는 이 같은 허점을 보완하고, 경영진에게 의무를 무겁게 부과해 리스크관리에 대한 금융사 전반의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문제는 책무구조도가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후 제재로만 활용이 된다면 금융사고가 줄기는커녕 외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에 큰 책임이 부여되는 만큼 새로운 금융서비스 도입을 꺼리게 되는 등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시행된 지 3년이 다 돼가는 산업계의 중대재해처벌법 현실을 보면 이런 우려는 당연해 보인다. 재해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처벌만 강화되다 보니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특히 모호한 규정 때문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목적이 처벌과 제재가 아닌, 예방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책무구조도를 단순히 도입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치밀한 운용이 필요하다.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인을 진단하고, 이에 따라 책무 기술 및 배분이 적절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잰걸음에도 사고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금융권의 신뢰도는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은행권에서 발생한 사고금액은 무려 2800억원에 달한다. 책무구조도를 잇따라 도입하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이 청렴과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금융권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zoom@fnnews.com 이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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