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준 정치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골프광임을 감안해 향후 외교행사를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이른바 골프외교를 위해서는 최소한 공이라도 제대로 맞혀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과 친분을 쌓기 위한 골프 연습은 그 자체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 단기간에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운동으로 골프만 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연습한 만큼 트럼프 당선인 앞에서 제대로 골프실력을 보여주길 바라본다.
윤 대통령의 골프 연습 소식에 자연스럽게 한 인물이 떠올랐다.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다. 아베 전 총리는 국가정상급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당선인과 골프 라운드를 즐겼다. 횟수만 따져도 총 5회에 이른다. 골프를 통해 두 사람은 상당한 친분을 과시했다.
밀월관계로 표현될 만큼 두 정상이 개인적으로는 친했지만 외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아베 내각은 TPP를 미일동맹의 상징이자 아베노믹스의 핵심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TPP를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재앙으로 규정하며 1기 취임과 동시에 탈퇴했다.
트럼프 당선인 달래기도 유명한 일화다. 1기 시절 대일 무역적자가 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트럼프 당선인은 일본에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를 압박했다. 결국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신예 전투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당시 금액만 13조원이 넘는다.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사람이 트럼프 당선인이다. 친하다고 절대 봐주는 일이 없다. 조만간 골프외교에 나설 윤 대통령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포인트다. 트럼프 2기에서는 관세인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축소 또는 폐기 등이 한국 기업의 경영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 분야에서는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이라고 칭하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는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골프는 트럼프 당선인과 친분을 쌓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서면 우리가 챙겨야 할 알맹이(내용)는 한둘이 아니다. 아베 전 총리가 골프카트를 몰며 트럼프 당선인과 환하게 웃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는 웃으며 친교를 과시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항상 뒤통수를 쳤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을 기억하자.
syj@fnnews.com 서영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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