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의지 가운데에서 여전히 온도차 적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베이징=이석우 특파원】한중 정상의 2년 만의 정상회담으로 개선 움직임 속에 있는 두 나라 관계가 관계 개선을 향해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이용해 29분간의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두 나라가 관계 복원 등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회담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후 2년 만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인한 미국의 일방주의 강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접근 등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두 나라는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관계 강화를 서로 필요로 하고 있다.
시 주석, "한중 자유무역 체제를 지키고, 산업 공급망 흐름 지켜자"라고 강조
시 주석은 공개된 회담 모두 발언에서 지난 2022년 발리에서 윤 대통령을 만난 후 "지난 2년동안 국제 및 지역 정세가 많이 변했고, 중한 관계가 전반적으로 발전의 모멘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 개선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래지향적인 포석을 한 것이다.
시 주석은 "한중이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지키는 데 함께 힘쓰고 글로벌과 지역 산업 공급망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흐름을 지켜야 한다"면서 "우호 증진에 긍정적인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한미일 공조 강화 및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한 이견 등 두 나라가 조심해야 할 함정과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주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온도 차이는 여전하다.
양측은 회담 내용을 각각 발표했다. 중국 측 발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적 군사협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빠졌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공감대를 넓히면서, 중국의 역할을 확대하려고 시도했지만, 중국 측 발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적 군사 협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빠졌다.
중국 발표문에 북한 관련 언급 빠지는 등 온도 차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에 대해 중국은 크게 우려하고 있지만, 이를 표면화시키지는 않고 있다. 올해가 북중 수교 75주년이지만, 중국은 북한에 거리를 두면서 북러 접근을 경계해 왔다.
우리 측 발표문을 보면 윤 대통령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에 대응해 한중 양국이 역내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데 협력해 나가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측 발표문에선 북한과 관련한 언급이 아예 빠졌고 '하나의 중국'과 관련한 언급이 포함됐다.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 문제에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나타났다. 윤대통령이 내년 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의 방한을 초청한 데 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먼저 윤 대통령의 방중을 초청했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라는 우리 측의 주장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이는 한국 측의 태도와 양국 관계의 진전 과정을 보고 방한을 결정하겠다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크다.
관례적으로 APEC 정상회의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해 왔지만, 내년에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신호이다. 우리 측이 그동안 앞서 6차례의 한국 대통령들의 중국 방문이 있었지만,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10년 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중국 측에 전해왔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문제도 여전히 이견
한미일 공조 강화와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 표명 등의 문제가 두 나라 사이의 시각 차이로 남아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세 나라는 대만 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만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3국 공동 발표에 대해 중국은 매우 불만이 컸다는 후문이다.
한미일 세 나라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론적인 언급이라는 입장에 대해 중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으로 이 같은 발언은 내정 간섭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우리 측은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 발표문에서 윤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언급과 대응은 앞으로도 한중 관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한 문제이다.
시 주석이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중한 양국은 수교의 초심을 고수하고, 선린우호의 방향을 지키며, 호혜 상생의 목표를 견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미일 3국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중국을 겨냥해서는 안된다는 중국 측의 입장 등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한미일 공조와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리 측 입장에 불만 여전
두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후속 협상을 가속화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관련 협의도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내년 발효 10주년을 맞이하는 한중 FTA가 한중 FTA 서비스 투자 협상이라는 미완의 과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 나갈 뜻을 확인한 것이다.
또 보다 높은 단계의 FTA로 만들어나가자는 입장에 뜻을 모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FTA가 우리에게는 바로 국내 유권자들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전의 속도를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높아진 중국과의 협상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다만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속에서도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모색하는 두 나라 사이에 '윈윈'할 수 있는 여지를 찾는데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날 회담에서도 윤 대통령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 환경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잘 살펴 달라"라고 시 주석에게 당부했다.
또한 중국은 대외 개방을 확고하게 확대할 것"이라면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국, 한국을 '일방적 무비자' 대상에 포함, 주한중국대사 내정 등 관계 개선 의지
한편 중국은 최근 한국을 '일방적 무비자' 대상에 전격 포함시키고, 4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주한 중국대사를 내정하는 등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한중 관계 개선 신호를 발신해 왔다.
중국 정부는 다자외교를 해 온 다이빙 주유엔 중국 대표부 부대표를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 내정한 것으로 지난 14일 알려졌다. 다이 부대표가 다자외교의 정점인 유엔에서 활약하다 한국으로 온다는 점에서 이전 대사들보다 더 무게감이 나간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중국이 이달 8일부터 여행·비즈니스 등을 목적으로 15일 이내 기간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 일반여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비자 발급 면제에 들어간 것도 중국 측의 양국 관계 활성화에 대한 의지이다. 양국이 서로 비자를 면제하는 '무비자 협정'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자 없이 외국 여행객을 맞아들이는 조치이다.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에 포함한 것은 처음이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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