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AI 국가안보각서(AI NSM)'에 서명했다. 각서에는 인재 유치 등을 포함해 인공지능(AI) 자원을 국가전략화하고, 미국이 AI시장을 주도하는 환경을 조성토록 각 정부 담당자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서 내용이 냉전시대 당시의 '페이퍼클립 작전'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초고강도 인재 확보전략을 펼쳤던 미국의 경험이 묻어난다.
페이퍼클립 작전이 벌어진 배경은 이렇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열강들은 새 국면에 돌입했다. 냉전 무드가 조성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기술경쟁에 사활을 걸게 된 것이다. 핵, 로켓, 화학 등 과학분야에서 앞서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탄두를 먼 곳까지 정확하게 유도해 실어나르는 기술은 우주기술 경쟁에 필수적이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주목한 국가는 독일이다. 패전국 독일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과학자들은 위협의 불씨였다. 전쟁 당시 독일은 절박했다. 전쟁 후반부에 미국에 밀린 데다 소련까지 적이 되면서 수세에 몰렸다. 물자와 군비 경쟁에서도 뒤처지자 독일은 전세를 뒤집을 마지막 카드로 첨단무기 개발을 택했다. '과학 올인' 전략이다. 직업을 잃고 트럭 운전을 하거나, 전장에서 총을 쥐고 있는 석학들을 모두 끌어모아야 할 판이었다. 독일 군사연구협회의 베르너 오젠베르크 회장은 소환할 과학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들은 로켓공학과 화학기술 등의 개발에 주력했다.
독일 과학자 리스트를 확보한 미국은 2차대전 후 이들을 체포·심문하는 '오버캐스트 작전'을 시행했다. 체포와 심문을 총괄했던 로버트 스태버 소령이 대면한 과학자들 중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이라는 로켓 공학자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독일이 발명한 세계 최초 장거리 탄도미사일 'V-2 로켓' 프로젝트를 이끈 수장이다. 이 인물을 그대로 놔둘 경우 다른 중립국에서 로켓 개발에 나서거나, 최악의 경우 소련이 데려갈 가능성도 컸다고 한다. 스태버 소령은 정부에 전보를 보내 "과학자들을 선별해 미국으로 즉시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스태버 소령은 심문한 과학자들의 인적 서류에 종이클립을 끼워 즉각 이주대상자를 선별 관리했다. 미국 정부가 이를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재명명한 이유다. 초기에 폰 브라운을 비롯한 과학자들과 기족들이 대거 이주했고, 미국 정부는 이들이 나치 정부에 공헌해왔다는 기록을 지워주기까지 했다. 이런 전략은 윤리적 비난을 받았지만 향후 미국이 소련과 우주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바이든이 서명한 AI 국가안보각서가 현대판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서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법무부, 교육부, 국토안보부와 정보기관은 AI 가속화를 위해 인재 채용·유지 정책과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냉전시대 미국의 인재유치 경쟁 대상국이 소련이었다면 이번엔 중국이 대상국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되면 미국의 AI인재 확보 경쟁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토터스 미디어가 발표하는 '글로벌 AI 인덱스' 순위에서는 미국이 100점 만점 중에 100점으로 1위를, 중국이 53.9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AI 인덱스는 인재·인프라·운영 환경·연구·개발·정부 전략·상업적 벤처 등 7개 지표가 기준이 되는데 한국은 27.3점으로 6위에 머무르고 있다. AI인재 확보와 관련해 민간업계에서 느끼는 장벽은 어마어마하다. 자본과 인력을 갖춘 미국의 경우 박사후급 인력을 고용하는 데 연봉 7억 이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만 한 가치가 있겠지만, 경쟁사나 경쟁국이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고 한다.
자본력 측면에서 국내 AI업체가 갈 길은 너무나도 험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AI전략 청사진을 수립 중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논의해서 한국형 AI 페이퍼클립 작전을 가동해주기 바란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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