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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다가오니… 굴릴 곳 찾아가는 요구불예금

이달들어 잔액 10조 넘게 줄어
美 대선 직후 투자 움직임 뚜렷
회전율 급락한 9월과는 대조적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에 투자 대기성 자금들이 갈 곳을 잃으면서 은행에 묵힌 돈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3%대 초반까지 하락한 은행 예금까지 투자금이 흘러가는 가운데 최근 미국주식, 가상자산 등의 투심이 살아나면서 연말께 회전율이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6.5회로 지난해 5월(16.3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높았던 지난 7월(19.9회)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3.4회 급락한 수치로, 2020년 12월(4.7회) 이후 최대 낙폭이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0.1~0.2% 수준인 예금이다. 3~4%대인 일반예금과 달리,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해 주로 투자하기 전에 돈을 모아두는 임시 거처로 쓰인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월중 예금지급액을 예금평잔액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은행에 자금에 묵혔다는 의미다. 통상 회전율은 투자 대기성 자금이 요구불예금에 몰리며 분모에 해당하는 잔액이 늘어날 때 낮아진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풀렸던 2022년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15.4회까지 떨어지며 연간 역대 최저치를 갱신한 것이 좋은 예다.

실제 9월에도 은행권의 요구불예금은 크게 늘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예금 포함)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623조317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말 대비 6조851억원 늘었다.

문제는 마땅히 돈 굴릴 곳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투자자예탁금은 56조8328억원으로 60조원을 넘보던 8월 초와 비교할 때 2조원 넘게 감소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채권 등을 매매하기 위해 예치한 자금이다. 지난달에도 투자자예탁금은 50조5865억원에 머무르며 전월 말(56조8328억원) 대비 6조원 이상 축소됐다. 연초부터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 정책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자 국내 증시에 대한 매력도가 급감한 것이다.

투자처를 잃은 개미들은 3%대 초반으로 떨어진 은행 예금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9월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39%로 1년 전과 비교할 때 0.50%포인트(p) 하락했다. 그럼에도 9월 5대 은행의 예·적금 잔액은 968조4787억원으로 전월보다 6조2501억원 늘어났다.

다만, 연말이 다가올수록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국내 증시를 떠난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요구불예금 잔액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총 587조6455억원으로, 지난달 31일(597조7543억원)보다 10조1088억원 감소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주식 보관금액은 미국 대선 직후로 1000억달러를 넘기며 장기 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고,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 규모도 15조원에 육박한 상태다. 한은 관계자는 "9월의 경우 추석 연휴 등 영업일수 등의 영향으로 회전율이 줄어든 효과가 있다"며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했을 때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분자에 해당하는 지급액이 늘면서 회전율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