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력 있어도 국선 선택
취약층, 변호 받을 기회 넓혀야
한달 25건 달하는 사건에 치여
보수 증액은 처우개선 첫걸음
안전하게 일하는 환경 뒷받침
국선에 대한 인식 변화도 기대
김도윤 인천지법 소속 국선전담변호사. 사진=최은솔 기자
"사선(사적으로 선임한 변호사)이면 갑질했을 텐데요"
김도윤(38) 인천지법 소속 4년차 국선전담변호사는 한 피고인이 던진 이 말이 지금도 불쾌하게 남았다고 했다.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이들에게 제공되는 국선변호가 '공짜 변호'로 치부되며, 무리한 요구와 편견 속에서 국선변호사들은 보람을 잃는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20일 인천지방변호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사선변호인 못지않게 치열하게 일하는 국선변호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국선전담변호사의 하루
김 변호사의 하루는 피고인 상담과 재판 준비로 시작된다. 김 변호사는 "한 달 평균 24~25건의 사건을 맡고, 이보다 더 많아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폭행 등 여러 형사사건의 변호를 맡는 김 변호사는 어느 날에 새벽 3시까지 서면 작성에 매달리고, 긴급한 재판 준비로 야근을 자처하기도 한다.
김 변호사의 지난 1년의 달력은 재판 기일로 꽉 차 있었다. 재판 일정은 물론 재판에 필요한 의견서 작성, 피고인 상담·접견 등으로 빽빽했다. 국선변호 과정이 단순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김 변호사는 피고인의 권리를 위해 증인신문, 위헌법률심판제청, 국민참여재판 등 복잡한 절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 3월부터 8개월간 공판을 거쳐 무죄를 이끌어낸 사례는 그가 꼽는 가장 보람 있는 사건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국가가 변호사를 선임) 사건만 맡는다. 통상 법원은 피고인들이 구속된 상태거나, 미성년자거나, 70세 이상이거나, 농아 혹은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지만 사선 변호사를 구하지 못할 때 직권으로 국선변호사를 붙인다. 이렇다 보니 피고인 중에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노년층과 취약계층이 많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이 복용 중인 약과 소견서를 준비하도록 돕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
■'보수 증액'은 첫발
국선전담변호사는 2년 단위로 법원과 위촉계약을 맺으며, 6년이 지나면 재위촉을 위해 지원서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보수는 첫 위촉 시 세전 월 600만원에서 재위촉하면 최대 800만원까지 상승하지만, 이 금액으로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 급여 등을 모두 직접 부담해야 한다. 월 60만원의 운영비가 지급된다고 해도 살림이 빠듯하다.
김 변호사는 "한 달 운영비로 120만원, 4대 보험료로 60만원이 나간다"며 이 외에도 사건 기록 복사와 소송 준비 비용 등이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무실 내 낡은 에어컨 때문에 자꾸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원장 간담회에서 요청한 끝에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국회에서 국선변호사 관련 예산을 수백억원 증액한 것에 대해선 기대감을 표했다. 김 변호사는 "100만원 정도만 보수가 올라가도 좋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다만 그는 "보수 인상은 처우 개선의 첫걸음일 뿐, 국선변호사의 안전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제도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개선 방안도 김 변호사가 힘주어 언급한 부분이다. 그는 국선변호가 '실수요자'로 향하도록 할 수 있도록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현재 필수 국선변호 대상에 70세 이상인 사람으로 돼 있지만, 70세 이상임에도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 여력이 풍족하다면 제외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건물주나 대부업자 등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도 국선변호가 무료라서 선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 등 새로운 사회 취약 계층에게 더 많은 국선변호를 받을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국선변호'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김 변호사는 "국선과 사선이 맡은 사건이 다르다는 인식이 바뀌면 좋을 거 같다"며 "국선이 막연히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놀고먹거나, 고수익만 좇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선이기에 선임료에 상관없이 중요한 내용이라면 다툴 건 다투는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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