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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일회용품

[기업과 옛 신문광고]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일회용품
홍성유의 신문 연재소설 '태양에 감사한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희는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주며 소녀처럼 재잘거린다."(경향신문 1968년 2월 24일자) 또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에는 "한참 후에 종이컵과 맥주를 들고 사내가 왔다. 그러나 그는 두리번거리더니 그냥 경아를 앞에 두고 스쳐 지나갔다."(조선일보 1972년 12월 9일자)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종이컵이지만, 꽤 오래전에도 종이컵을 사용했다는 게 뜻밖이다. 사실 종이컵의 원조는 장노년층이 기억하고 있을, 신문지를 말아 만든 원뿔 모양의 종이컵이다. 학교 앞에서 장사치들이 번데기나 다슬기를 넣어 팔던 것이었다. 지금도 번데기 장수가 있고 보통의 종이컵에 번데기를 담아 판다. 소설에 나오는 종이컵은 요즘의 종이컵과 질이 다른,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원시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술이나 음료, 냉차를 마시는 데 쓰였다.

대표적인 일회용품인 종이컵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종이컵 발명가는 미국인 휴 무어로 1908년에 첫 제품을 선보였다. 그는 형이 발명한 정수기용 유리컵이 잘 깨져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물에 잘 젖지 않는 종이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직후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하자 종이컵은 인간을 바이러스에서 구한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대접을 받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린 일회용품이 혁신 제품으로 환호를 받은 것이다.

종이컵은 자동판매기 보급과 더불어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 자동판매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2년 무렵으로 콜라 자판기였다. 컵라면이 국내에서 처음 선뵌 것도 그해다. 50여년 전으로 생각보다 이르다. "끓이지 않고 3분이면 먹을 수 있다고? 희한한 얘기 아닙니까?" 광고 문구에는 어디서나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의 편리함을 이렇게 홍보하고 있다.(조선일보 1972년 3월 31일자·사진)

컵라면의 원조도 일반 라면처럼 일본이다. 1971년 일본 닛신식품의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가 창안했다고 한다. 1958년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었는데 처음에는 일반 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조리하던 형태였다. 그러다 서양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팔기 위한 아이디어로 컵누들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종이 용기를 주로 쓰는 지금과는 달리 최초의 컵라면 용기는 얇은 플라스틱을 골판지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삼양식품은 1976년 컵라면 자동판매기를 처음 설치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최초의 컵라면은 수영장 등 한정된 곳에서만 팔리다 값이 비싸 단종되고 말았다. 컵라면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1981년 농심이 대표적 즉석라면이 된 사발면을, 삼양이 다시 '1분 컵라면'을 내놓고 경쟁하면서 즉석라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종이 용기는 우유 보급에도 전기를 마련했다. 무거운 유리병이 가벼운 종이 용기로 바뀌어 나르기가 편해졌고 용기를 회수할 필요도 없었다. 남양유업에서 종이 용기에 담은 우유를 처음 내놓은 것은 1972년 3월이다. 당시에는 용기가 삼각뿔 모양이었다. 나중에 지금과 같은 육면체 형태로 바뀌었다.

일회용 종이기저귀는 1961년 미국의 P&G가 출시한 것이 최초인데 그와는 무관하게 국내에서는 1969년 '무궁화 위생화장지공업사'가 종이기저귀를 판매했다고 돼 있다. 여전히 많은 주부들은 광목 기저귀를 썼다.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합작사인 유한킴벌리가 1982년부터 '크린베베' '하기스' 등의 제품을 선보이면서 기저귀는 거의 일회용으로 바뀌었다. 한편 일회용 생리대는 1966년 위의 무궁화공업사가 광고한 '크린패드'라는 제품이 국내 최초로 여겨지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 유한킴벌리가 화장지 크리넥스와 함께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를 생산하면서 여성 생활도 편리해졌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