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으로 끝난 계엄령
대다수 국민은 동의 안해
답답한 심정의 토로일까
손성진 논설실장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채널을 돌리다 KTV에 멈추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담화문을 읽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시도한다니까 긴급 호소문 같은 것을 발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상해지더니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건 아닌데' '경제도 안 좋은데 큰일 났다' 등의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야당의 입법폭주가 도를 넘어섰다는 건 국민들이 다 같이 느끼고 있는 바다. 그렇다고 계엄, 그것도 비상계엄이라는 낡고 거대한 칼을 꺼내 들 정도의 시국인지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국민이 대다수다.
더욱이 헌법의 계엄 조항은 여소야대 국회가 있는 한 힘을 쓰지 못한다. 5공화국 헌법까지는 대통령이 국회해산권을 갖고 있어 계엄령과 동시에 해산권을 발동하면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헌법 조항은 해산권을 박탈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켰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도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한 때는 해제해야 한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여야 한다'인 것은 재량권이 없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속행위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왜 실익도 없는 비상계엄을 발동했을까. 포고령 1호를 발표했을 때는 의원들의 국회 진입과 표결을 막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해제 요구를 못하도록 의원들의 신체를 구속하거나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다. 해제 요구가 국회에서 올 것이고, 그러면 윤 대통령 자신도 바로 해제하겠다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심정을 국민 앞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끝도 없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야당은 줄기차게 자신들이 원하는 입법을 들이미니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인 비상계엄을 생각했을 수 있다. 어떤 정치적 반전을 꾀하겠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앞뒤 못 가리는 문외한의 극단적 모험이라고 해야 할까.
한밤중의 해프닝성 소동으로 끝난 비상계엄 발동은 윤 대통령이나 여당인 국민의힘에 득 될 게 없다. 이번 일은 야당의 공격에 큰 빌미를 제공했다. 야당은 그러잖아도 꺼내 들 시기만 노리던 탄핵의 화살을 즉각 쏘았다. 윤 대통령 자신에게는 더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레임덕은 조기에 찾아올 수 있고,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과거 군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계엄령은 민주화 사회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다. 비상계엄은 전쟁, 내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만 발동할 수 있다.
야당의 공세와 노조의 시위가 과하다 해도 계엄령을 선포할 조건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여당인 민정당이 국회에서 우위를 점했던 전두환 시대의 6월 항쟁에서도 계엄령이 검토된 적은 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지금, 계엄령은 시대착오적이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고성이 일상인 정치 후진국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잘 갖춰진 민주적 제도와 절차 안에서 최소한의 규정을 지키며 하는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바라보는 21세기 대명천지의 계엄령은 참 생뚱맞다. 발동요건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그러면 전쟁이 아니면 쓸 일이 없는 거의 사문화된 제도로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시끄러운 반대파들을 군홧발과 총칼을 동원해 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구시대적 용어를 구사한 담화나 포고령에서도 그런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좌파 '개딸'의 행태에서도 보이는 맹목적인 신념은 몹시 위험하다.
소동을 지켜본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합리적이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줄 알았다. 자기 편이라고 덮어놓고 옹호하지 않고 비판할 줄 아는 것, 건강한 정치의식이자 한 줄기 빛이었다. 정치인보다 국민의 생각이 항상 옳다는 변치 않는 진리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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