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의 시대
자의식의 과잉 발전과 개인성의 확장은 이 모든 세계사의 지형을 변혁시켜 '거대한 역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독버섯처럼 증가하는 이런 자기기만의 확산은 고통이 서서히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가린다.
권력을 통한 사회감시와 통제 기능은 급기야 이들에게 무한정의 자유와 정의라는 자의식의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과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신성불가침의 표식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고대 인류의 위대하고 복잡하게 발전된 감각적 인식과 지식을 거의 완전하게 상실했다". DH로렌스는 인간이 세상과 분리된 존재로 자각할 때 원초적 감정이 상실된다고 했다. 이 분리된 감정은 보통 자의식 발달의 결과로 해석된다. 고통과 불안, 욕망의 확장으로 인간은 세상과 단절된 채 거친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생존의 기계로 변했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과정에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충동과 지식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을 질서정연한 그 무엇으로 바꾸려는 지식과 욕망이 합쳐져 세상과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자의식이 촉발한 지식폭발
분리 이전의 세계는 자연과 통합하며 소통하고 공동체와 연대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특징들이 인간세계를 지배했다. 자연 전쟁이나 소유에 따른 불평등, 집단 간 갈등이 거의 없거나 미미했다. 인간이 세상과 분리되는 것은 환경 변화와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치열한 생존 투쟁의 결과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생존하려면 경쟁과 갈등은 필수적인 과정이었고 이를 조직하기 위한 권력 형성의 과정도 뒤따라야 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과 계급구조는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절대적 표상이다. 이른바 자의식의 발전은 소유욕과 지배력을 동반하며 세상을 '탈취'라는 개념으로 변모시켜 적대적 인식을 낳게 하는 원동력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분석하고 생존에 필요한 지식으로 무장할 수 있는 '지식폭발'이라는 긍정적 결과도 만들어냈다.
자의식의 발전은 개인성의 시대를 앞당긴 촉매제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나'라는 사고 자체가 없었고 '우리'라는 공동체 감정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사회였다. 굳이 나를 앞세울 이유가 없었다. 자의식이 발전할 이유와 조건 자체가 갖춰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농경'이라는 인류의 문명사적 발전은 인간의 자의식을 폭발적으로 팽창시켰다. 정착과 농경은 많은 인구와 이를 관리하기 위한 고도의 행정체계가 필요했으며 다른 집단으로부터 자기 집단을 지켜야 하는 절박성으로 군대와 전쟁이 필요했다.
전쟁과 기부장제·사회적 불평등은 인류 사회의 온갖 억압과 차별을 강제하고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대한 역전'의 세계
자의식의 과잉 발전과 개인성의 확장은 이 모든 세계사의 지형을 변혁시켜 '거대한 역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인류가 지녔던 만족과 충만함의 감정을 잃고 정신적인 불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문명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분출됐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렌슬롯 로 화이트는 기원전 2000년이 시작될 무렵 유럽인의 의식 분열과 마음과 몸의 분열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곧 이성적 자기의식이 발전하면서 마음은 분리된 독립체가 돼 몸으로부터 독립했고 사람들은 자기분열을 경험하는 것을 의식했다. 세익스피어가 햄릿에서 "결실이 갖는 천연의 혈색 위에 사색의 창백한 병색이 그늘지게 됐다"는 표현처럼 생각과 본능의 충돌,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 사라진 것이다.
모든 비극의 뿌리는 세계와 분리되면서 시작한다. 분리와 소외는 세상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든다. 인간들이 벌이는 인정투쟁은 개인 차원을 넘어 집단 간 경쟁을 낳고 마침내 전쟁이라는 파국적 결말을 초래한다. 인간의 의식이 세상을 다른 그 무엇으로 인식하면서 비극의 서막이 열린다. 통합과 공감이라는 원초적 감정은 약해지는 반면 경쟁과 투쟁이라는 적대적 감정이 인류사회를 지배한다. 문제는 이런 감정들이 마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인정하는 자세와 관행이다.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인정투쟁은 인류사회의 극히 짧은 순간 섬광처럼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인류 문명 이전에 살았던 원시사회는, 아니 인류 문명 초기만 해도 인간들은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치밀한 고증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원시사회에서 자원은 늘 공동체에 동일하게 분배됐고 권력을 획득하거나 그럴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인정투쟁이라는 현상이 마치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비역사적 태도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 한 모든 이론과 사상은 맹목적이고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면 불평등·불공정·억압적 권위주의·성차별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부족주의와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나치가 우생학을 이용해 전쟁 야욕을 벌인 것처럼 한 집단이 이런 유사우생학을 현실적 통치수단으로 써먹게 되면 그 사회의 메커니즘은 파괴된다.
특히 한국사회는 권력기관들이 모든 권력구조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원칙을 파괴하는 기형적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수단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사회를 운영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과잉된 '자의식'을 획득했다. 권력을 통한 사회감시와 통제 기능은 급기야 이들에게 무한정의 자유와 정의라는 자의식의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과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신성불가침의 표식이 됐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라는 자의식을 태동시킨 결과다. 반면 모든 사회집단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문화를 통해 이를 묵인·방조하면서 벌어진 현상일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는 별것 아닌 일로 여겨진다.
권력을 소유한, 혹은 소유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행위는 이런 비정상적 운영체제가 속속들이 체화돼 있어 배타성과 잔인성을 특징으로 한다.
계속 이어지는 정부채무 등의 논란도 이런 연장선이다. 정부채무가 급증하니 정부 지출을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무와 부채의 개념을 교묘히 혼용해 정부채무가 1000조원이 넘는다는 논리로 사회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한 재정지출 최소주의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성장률 둔화, 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런 시도를 구체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재정준칙' 도입은 종전 통합수지로 잘 관리되던 재정을 관리수지라는 지표로 관리해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재정지출 최소화로 재정 적자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입을 해야 하고 이는 다시 정부 채무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부처의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집단들이 사회라는 전체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자신들만의 조직이익이나 논리로 운영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은 늘 현실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견제와 감시·감독이 시급하다.
■자기기만의 마술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는 낙관주의가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해악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마법을 곧잘 부린다. 약간의 자기기만은 강한 정신력에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기만은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의미로 변했다. 쉽게 말해 긍정적 착각은 약간의 인지적 결함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뤄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끈질기게 붙들고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현실에서는 이런 자기기만이라는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구세주라는 증거가 많다. 기만의 '기이한 연금술'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러니 기만에 취한 뇌는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이, 또는 특정 집단이 설정해놓은 좌표를 향해 나아간다. 진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독버섯처럼 증가하는 이런 자기기만의 확산은 고통이 서서히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가린다. 단기적으로는 혜택을 받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된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따르며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공격적이며 자신을 매우 높게 평가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패권주의·지배욕에 대한 과잉된 욕망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무질서를 질서로 깔끔하게 재편할 수 있다는 과한 믿음에 갇혀 있다.
권력과 지배에 도취된 자들의 특성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고, 비판받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러면서 자신의 관대함과 관용을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율배반적 특징을 종종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김태경 전국부 선임기자
ktitk@fnnews.com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