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대가 혹독, 국민 희생
尹, 사과없이 정당성 항변
권력은 헌법 안에 있어야
정상균 논설위원
북한산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이 쓰러졌다. 117년 만의 기록적 첫눈이 내렸던 지난달 말, 비바람에도 꼿꼿하던 것이 꺾이고 부러진 것이다. 어떤 것은 사람 몸통만 한 줄기가 부러져 짐승의 송곳니처럼 흉측했다. 뿌리째 바위에 기대어 간신히 생명을 지킨 것도 있다. 언 땅에 떨어진 청솔가지는 시퍼렇게 눈을 뜬 채 살아 있었다. 그날 새벽 북한산은 눈(雪)과 나무의 전쟁터였다.
사람 세상도 그랬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영화 같은 현실에 놀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토록 허술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에 참담했다. 피와 땀으로 축적한 국격은 추락했다. 군인에 맞선 국민들은 성숙하게 행동했다. 민의를 당리로 뒤집은 정치인은 비겁했다. 수만 부하를 지휘했을 고위 장성은 그저 초라했다. 계엄을 모의하고 동조한 일당은 구속됐다. "TV 보고 알았다"는 이들의 첫 증언은 거짓이었다. 계엄 수일 수시간 전 군경 수뇌들이 인지하고 작전을 수행했다. 계엄 절차였던 국무회의는 5분짜리 들러리였다. 무장한 특수전 병력 1600여명이 투입됐다. 정치인 체포·구금조도 가동됐다.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도 있었다.
대통령은 탄핵됐다. 내란·직권남용 혐의 피의자가 됐다.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냐"며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게 윤 대통령의 항변이다. 내란죄 수사가 '광기'라며 법적 대응에 몰두 중이다. 사과는 없었다. 계엄 탄핵 후 실물경제는 더 추락했다. 트럼프 외교에서도 패싱당했다. 통치자 오판의 대가를 온몸으로 치르고 있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미래세대가 치러야 할 유무형의 대가는 분명 더 클 것이다. 12·3 계엄의 진실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여러 분석을 요약하면 윤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에 이른 기저는 세 가지다. 극우에 치우친 확증편향, 상대 의견을 듣지 않는 불통, 소수 충성파에 차단된 좁은 판단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규범을 허무는 선동적 지도자와 위기를 느낀 기성 정치세력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의 결과로 민주주의는 붕괴한다"고 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국가의 허술한 안전망에 159명의 청년들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윤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을 도리어 감쌌다. 국민의 울분에 공감하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 의혹은 야당 탄핵폭주의 빌미였다. 임기 절반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사과했으나 "제 처를 악마화한 것"이라며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지 국민들이 어리둥절할 것 같다"는 질문에 대통령실은 "무례하다"고도 했다.
국민을 섬기라고 위임받은 권력이 군림한 듯 섬뜩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에 불참한 이유를 "악수도 거부하고 야유도 하고, 대통령 그만두지 여기 왜 왔어요라는 사람도…"라고 말했다. 야당이 예의 없이 군다면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이재명 방탄' 민주당의 탄핵·입법 횡포, 극단적 분열 행태를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침묵하는 보통의 국민을 봐서 국회에 갔어야 했다. 대통령의 그릇에 야당의 야유 정도는 담아야 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의 독선을 비판하며 쓴 책('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신념은 진실을 차단하는 방어벽 기능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고 했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권력을 쥐면 오만해지고, 이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냥하고, 헌법기관을 무력화하려 했던 통치자는 용서받지 못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 비상계엄은 정권 탈취 군사반란으로 중대한 위헌임을 역사에서 배웠다.
대통령의 분별은 헌법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 손바닥에 떨어진 눈처럼 가벼운 것도 없다. 그것에 단단한 것이 부러진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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