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중국에 따라잡히는 형국
특별법 통과 등 정치권서 지원 급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출처=연합뉴스)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5대 제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불황과 중국의 약진에 세계 선두권에서 밀려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한국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의 위기는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첨단 D램인 DDR5 양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한중 기술격차가 더 좁혀진 것도 큰일이지만, 중국을 큰 시장으로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가 중국 업체들에는 오히려 약이 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서 나아가 화웨이와 창신메모리 등 중국 업체들은 한국과 대만이 주도하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에도 도전장을 던져 거의 기술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부활의 날개를 편 조선업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올해 수주 비율에서 69%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는 중국에 비해 한국은 18%로 20%를 하회할 전망이다. 그래도 부가가치가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제조를 주도하며 수출금액을 늘리고 있어 현재는 사정이 나쁘진 않다. 그러나 선박 발주는 올해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고 LNG 운임도 떨어지고 있어 내년 전망은 밝지 않다.
자동차산업도 하이브리드차량의 선전으로 미국 수출이 늘고 있지만, 최대의 적은 역시 중국이다. 언젠가 자동차시장을 지배할 전기차 부문에서 22.3%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는 BYD(비야디)를 필두로 한 중국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 2위 자동차기업 혼다와 3위 닛산이 합병하기로 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을 세계 3위에서 4위로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은 이미 큰 위기에 빠져 있다. 값싼 중국 석유화학 제품의 공세로 관련 기업의 매출은 급감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대폭 적자는 롯데그룹의 위기설을 부른 진앙지가 됐다. 철강도 사정은 같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공장가동률이 3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고 포스코는 일부 공장 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여파와 다음 달 대통령에 취임할 미국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은 기업들의 차디찬 경영환경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탄핵정국 속에서 대응이 더디기만 하다. 반도체특별법도 여태 통과되지 않고 있고 미래형 선박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특별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와 정부가 할 일은 특히 반도체와 조선산업을 지원하는 특별법부터 통과시키는 일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한국공학한림원의 지적대로 미국은 68조원, 유럽연합은 62조원을 법으로 투자하기로 했지만, 한국은 직접 보조금 없이 세액공제만 해 주고 있다. 이래서는 경쟁국들을 이기기 어렵다.
동시다발로 터지는 제조업의 위기에 적기 대응하지 못하면 때를 놓쳐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개별 기업들이 먼저 자구책을 짜내야 하겠지만, 정부와 국회는 법안 통과와 직접 지원으로 산업계가 버텨내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외환위기에도 주력 기업들의 이런 동시 위기는 없었다. 정국이 어수선하지만 경제와 기업을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기 바란다. 절체절명의 시기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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