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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코끼리표 전기밥솥과 쿠쿠

[기업과 옛 신문광고] 코끼리표 전기밥솥과 쿠쿠
지난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 관광객들이 쿠쿠전자의 전기밥솥을 싹쓸이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었다. 그맘때 쿠쿠의 면세점 매출이 전년보다 600%나 늘어 회사 측도 놀랐다고 한다. 10여년 전부터 중국인들 사이에서 치솟았던 한국 전기밥솥의 인기는 물론 지금도 최고다. 찰지게 지어지는 밥맛이 좋기 때문이다.

40여년 전 일본 관광을 간 우리 주부들이 일제 '코끼리표' 밥솥을 들고 들어오던 광경이 떠오른다. 손도 모자라 일제 밥솥을 발로 밀고 공항 출입문으로 들어오며 '밥통 행렬'을 연출하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의 일본 전자제품 사랑은 밥솥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 가면 으레 카메라, 카세트 라디오 등 일제 물건을 사들고 왔다.

외제 선호 풍조가 넘칠 때인데, 한 일본 신문이 한국 여성들의 싹쓸이 쇼핑은 진기한 현상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쓰자 국내에서 난리가 났다. 당시 상공부는 "우리 제품도 좋은데 외제를 좋아하는 여인네들의 망국병 탓"이라고 여성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주부클럽연합회 등 여성단체들이 질 나쁜 국산품을 보호하는 산업정책을 펴면서 가족에게 맛 좋은 밥을 먹이려는 주부들에게 돌을 던지느냐고 역공을 가했다.

마침내 당시 전두환 대통령까지 나서서 "밥통 하나 못 만드는 밥통들"이라고 질책하자 그제야 공무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둔한 사람'이라는 속된 의미를 가진 밥통은 보온용으로, 밥솥과는 다르나 구분하지 않고 쓰였다. 관악산 기슭의 공업시험원에서 한일 밥솥을 분해했더니 한국 제품에 결함이 있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됐다. 사실 밥솥 제조기술은 고난도는 아니지만, 국산의 질이 떨어진 데는 주부들 말대로 산업보호정책도 한몫했고, 이윤이 적어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

정부와 기업들이 품질 향상에 나서 국산 밥솥은 그 뒤 일제를 능가할 정도로 좋아졌다. 국내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쿠쿠 전기밥솥은 현재 중국, 동남아,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에까지 수출하며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정부가 밥솥 제조술을 개발, 민간에 넘겼는데 그곳이 쿠쿠의 전신인 성광전자였다. 전기밥솥에서 사업을 넓혀 냉동고, 청소기 등 'TV만 빼고'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한다는 쿠쿠그룹의 매출은 올해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전기밥솥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이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군용으로 밥솥 개발을 시도했고, 처음으로 제품을 내놓은 사람은 조리기기 공장을 운영하던 미나미 요시타다로 1955년의 일이었다. 도시바와 산요 등 일본 전자제품 기업들도 밥솥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승자는 한국 주부들의 사랑을 받던 코끼리표였다. 코끼리표 밥솥을 만든 곳은 조지루시라는 기업으로 원래는 국내에서 '마호병'으로 불리는 보온병을 만들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밥을 짓는 솥이 아닌 보온 밥통을 만들다가 두 기능을 다 가진 밥솥을 제조했다. 코끼리표 밥솥은 지금도 일본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10년 후인 1966년 국내에서도 전기밥솥이 출시됐는데 가전기업 금성사에서 만들었다(동아일보 1966년 1월 4일자·사진). 그러나 밥 짓는 온도를 순식간에 올려야 하고 뜸도 들여야 하니 맛 좋게 조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마솥이나 양은솥에 짓는 밥맛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첫해에 500대밖에 팔리지 않을 정도로 소비자가 외면하자 금성사는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에는 한일전기가 일본 산요와 기술제휴로 전기밥솥을 내놓았고 금성사도 다시 생산했으며 삼성과 대한전선 등 많은 기업들이 생산에 동참했다.
전기밥솥, 보온밥통으로 각기 따로 만들다가 통합 제품이 나왔다. 대기업 제품보다는 일본 후지카와 제휴한 대원전기 밥솥의 점유율이 높았다. 대원 밥솥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쿠쿠에 많이 밀려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