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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계엄이 불러온 탈원전의 그림자

[테헤란로] 계엄이 불러온 탈원전의 그림자
이유범 경제부 차장
사상 초유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으로 윤석열 정부가 위기에 놓였다. '계엄'이라는 단어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은 커 보이며, 만에 하나 탄핵을 피한다고 해도 정권 유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윤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온 원전 생태계 회복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비판을 받으면서 윤 대통령은 친원전으로 노선을 바꿨다. 후보 시절 10대 공약에 '원전 최강국 건설'을 명시했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산업통상자원부에 국장급 조직인 원전전략기획관을 신설했다.

임기 중에 원전 관련한 성과도 뚜렷했다. 지난 2022년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올해 7월에는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1000㎿급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12월에는 루마니아에서 1조2000억원 규모 '원전 리모델링' 계약을 따냈다. 국내에서는 신한울 1, 2호기의 상업운전 개시와 함께 3, 4호기 건설을 허가하며 '원전 부활'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계엄으로 '원전 부활'은 '대통령의 추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원전 가동에 부정적인 야당의 집중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전업계에서는 현재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고 있다. 낙관론의 근거는 막대한 전력수요다. 최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첨단산업은 막대한 전력 소비를 피할 수 없다. 원전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야당이 다시 '탈원전'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관론은 역시 원전산업에 적대적인 야당의 성향에서 기인한다. 좌우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용후핵연료 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야당이 '탈원전' 내용을 포함한 것이 그 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권 국가들은 다시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안정적 전력의 공급, 미래 산업 대응이라는 큰 틀에서 원전 가동을 봐야만 한다. 원전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치가 아니다.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탈원전·친원전이라는 정치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원전 자체의 효용성만을 바라보는 정책 추진을 기대해본다.

leeyb@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