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무력감 느끼는 시민들
사고영상 반복 노출로 불안감 가중
"일상 유지하고 슬픔 공유해야"
2일 낮 12시15분께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비상계엄 이후로 매일 우울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더욱 슬픔이 큽니다."
2일 낮 12시께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앞에 설치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대학생 이세아씨(25)는 울먹이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시민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확인하지 않았나"라며 "계엄에 이어 이런 참사까지 일어나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불안해서 불면증까지 생겼다"고 호소했다.
■ "뉴스 보면 하루종일 우울"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역대 최악의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며 무력감과 비통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시민들은 계엄령 선포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일어난 참사로 공포가 극에 달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 사람과 슬픔을 나누고 규칙적으로 일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시청 앞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179명이 목숨을 잃은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뒤 우울감과 무력감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원구 주민 김명선씨(53)는 "남인 나도 못 견디게 가슴 아픈데 유족들 심정은 어떨지, 얼마나 속이 탈지 모르겠다"며 "뉴스로 유족들의 사연이나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하루 종일 우울하다"고 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참사가 반복되며 불안감을 느낀다는 시민도 있었다. 직장인 이주영씨(30)는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든 누구라도 그 비행기를 탔다면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개인이 조심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어서 앞으로 비행기를 타거나 새로운 곳에 여행 갈 때마다 두렵고 떨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참사로 불안감이 커진 시민들을 심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는 '마음안심버스'를 동원했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청 앞 분향소 인근에 세워진 버스에는 상담사 2명이 상주하고 있다. 그러나 버스를 방문하는 시민은 만나볼 수 없었다.
현장에 근무하는 상담사는 "참사 이후 3일째 상담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명이 상담을 받았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오는 4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면 상담을 운영한다.
■ "영상 반복시청, 트라우마 심화"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이후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여객기 참사가 일어나며 시민들의 비통함이 극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직자들에 대한 분노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며 "이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황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로 공포와 위협감을 느끼는 시민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고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시민들의 불안이 커졌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직후에는 동체착륙한 비행기가 콘크리트 둔덕과 부딪혀 폭발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참사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조의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재난 상황을 중계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잇따른 사회적 혼란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충분한 애도와 함께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참사 관련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며 "혼자서만 힘들어하면 트라우마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규칙적으로 살아가며 변함없이 일상을 지키는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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