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동북아질서 (下)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국내정치 몸살에 한일 관계 ‘멈춤’
리더십 부재에 정상 외교동력 상실
韓 정권 바뀌면 대일강경 노선 우려
과거사는 정교하게 접근해야 풀려
더 강력해진 트럼프 2기 외교 전략
'거래적 동맹' 우선시하는 트럼프
방위비·시장 개방 놓고 경쟁 유도
견고한 한미일 체제 균열 가능성
불확실한 안보·경제 협력 필요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가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향후 동북아 정세와 한일 관계에 대해 전망하고 있다. 사진=김경민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2025년 동북아 정세는 복잡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동으로 탄핵정국이 이어지고,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당내 기반과 지지율이 탄탄하지 않은 실정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며 새로운 외교 전선을 열고,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또다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고 있다. 여러 변수가 뒤섞이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까.
일본 내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11일 고마바 캠퍼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윤 정부가 한일관계를 다시 개선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국내 정치 리스크로 인해 한국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면서 더 큰 협상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의 트럼프 2기 체제에선 한미일 협력이 기존 바이든 체제처럼 견고하게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설명했다.
기미야 교수는 "이시바 내각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처럼 추진력 있는 외교가 나오기 어려워 미중 갈등이 심해질수록 한일이 각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 서기 압박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결국 한일은 대외 환경이 불확실해질수록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미야 교수는 앞으로 더 큰 혼란이 예고되는 만큼 상호 공조가 필수라면서 "역사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고, 안보·경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했다. 일본의 윤 대통령 평가는.
▲한일관계만 놓고 보면 한국이 먼저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려고 한 윤 대통령을 결단력 있고 일본과 화해를 중시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선 너무 쉽게 모든 걸 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협상은 보통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진전되는 것인데 한국이 양보 카드를 빠르게 다 꺼내 보여주니 일본은 더 내줄 필요가 없다며 굳이 움직이지 않았다. 외교력으로 점수를 주자면 낙제점이다. 현재는 탄핵정국으로 인해 '무정부 상태'처럼 국정이 멈췄다. 결국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외교를 펼치려 했어도 국내 기반이 약해졌으니 추진 동력을 상실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어떻게 봤나.
▲놀라웠다. 대선 후보 시절엔 그렇게 이념적이진 않았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국회를 반국가 세력으로 인식했다. 계엄령을 추진한 목적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웠고 준비 과정도 허술했다. 한국은 당분간 국가 운영이 마비된 상황에서 외교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다시 교체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향후 한일관계는.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반일이라기보다는 '일본을 꼭 중요한 국가로 여기지 않는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과 북한 문제에 집중하면서 일본을 우선순위로 놓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달리 경제적 실리, 국내 민심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역시 과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 일본이 전 세계에 선전포고했다 등 수위 높은 발언을 했던 이력도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정권이 교체되면 역사 인식이나 환경·영토 이슈 등에서 강경하게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안보 여건상 양국 협력을 전면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사 문제와 안보는 따로라는 기조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일본이 이 투트랙 접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시바 내각의 한일 외교 전략은.
▲아베 전 총리처럼 미일 공조를 주도하고 한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리더십이 현재 일본 정치판에 부재한 상태다. 이시바 내각은 이전 정권인 기시다 내각의 외교 기조를 벗어나긴 쉽지 않다. 역사, 경제, 외교적 현안에 대해 본인이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도 당내 기반 부족과 낮은 지지율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사도광산 등 역사 갈등은 계속되는 이슈다. 과거사 해법에 대한 견해는.
▲사도광산이든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든 한일의 관점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 입장에선 당연히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 한다. 일본도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강제는 아니었다'는 반발을 포기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대다수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고 구조적으로 강제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모두가 강제동원이다'와 '일부만 그렇다'라는 절대적인 대립이 아니라 제도적·구조적 강제성이 농후했다는 점을 양국이 함께 인정하는 쪽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면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 양국 정부 간 표현을 조율하는 과정이 더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 2기, 동북아 정세 전망은.
▲트럼프는 2017년엔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까지 거론했고, 2018년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며 협상에 나섰다가 2019년 이후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2기에서도 이어진다면 북한과 협상을 급진적으로 시도할 수 있고 반대로 강경책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1기 때부터 미중 갈등에 불을 지폈는데 2기에는 더 철저하게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미중 갈등이 심해질수록 한일에 줄 서기 압박이 세질 것이다. 그 와중에 한일 간 공조가 약하다면 미국이 두 나라를 번갈아가며 충성 경쟁을 유도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전략을 펼 수도 있다.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방위비나 시장 개방을 놓고 서로 경쟁시키는 시나리오도 상상할 수 있다.
―한미일 공조가 흔들릴 것으로 보나.
▲바이든, 기시다, 윤석열 체제가 3국 협력을 공고히 했던 양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을 경제적 거래로 보는 측면이 커서 여러 조건을 제시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부담을 줄 것이다. 주한·주일미군 주둔 관련 방위비 분담금 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기회요인은 없나.
▲트럼프는 맥시멈(최대) 압박과 맥시멈 개입을 동시에 활용하며 선택지를 넓게 설정하는 지도자다. 이를 감안할 때 미중 무역전쟁은 한편으론 한일이 협상력을 높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가변적이고 불확실성이 크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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