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웅 중기벤처부장
"대한민국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급여보다 실업급여가 더 높다 보니 어느 누가 일하려고 하겠는가."
최근 만난 중소기업 A 대표의 하소연이다. 사람을 채용해 사업 확장에 나선 A 대표는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인재 채용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 뒤에는 실업급여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실업급여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5년으로, 올해 꼭 30년을 맞는다. 도입 당시 수령조건은 '실직 전 18개월 중 12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였다. 근무기간에 따라 최소 30일에서 210일까지 평균임금의 50%만 지급했다.
2019년 10월에 확대 시행된 실업급여제도는 지급기간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리고, 급여액도 실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렸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는 취지였지만, 부정적 영향 또한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이직사유를 허위로 신고하고, 취업했으면서도 신고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받는 부정수급이다. 이로 인해 취업을 통해 일하는 근로자는 없어지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행태만이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어 나가고 있다. 실제 최근 3년간 매년 200억원 넘는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실업급여를 타고 경고를 받은 사례가 2022년에는 1024건이었지만 지난해 7월까지만 약 5만6000건이나 된다.
한국재정학회가 작성한 '실업급여제도의 고용 성과에 관한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자가 실업급여를 받은 일수가 2015~2019년은 평균 125일이었으나, 실업급여제도가 확대 시행된 2020~2023년에는 158일로 33일 증가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2018년 6조7000억원에서 2023년 11조8000억원으로 약 80%나 늘었다.
연구진은 실업급여제도 변화가 실업급여 수급기간, 취업 소요기간, 실업기간 등을 모두 늘려 구직급여 지급액 증가와 노동시장 재진입 지연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높은 실업급여 수준도 문제다. 지난해 기준 실업급여 수급자가 받는 월 최소액은 189만3120원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월 209시간 일한 근로자가 받는 실수령 월급인 184만3365원보다 약 5만원 더 많다. 실업급여가 사회보험료와 소득세를 공제한 최저임금 실수령액보다 높은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이런 역전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실업급여=시럽급여'라는 말로 혼용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실업급여 수급자가 구직활동 요건을 채우기 위해 면접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가 많고, 채용 뒤에는 출근하지 않는 가짜 구직자들이 판치고 있다.
중소기업 인력채용자들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정작 취업에는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와 사업자들이 각각 월평균 보수의 0.9%씩을 부담해 조성한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된다. 이는 비자발적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무제한 반복수급이 가능하고, 실업급여 수준이 최저임금보다 높다 보니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꺾고, 비양심적인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 역시 문제점을 알고 실업급여제도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고용보험료를 악의적으로 타 먹는 '꾼'들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복수급뿐만 아니라 최소 가입기간 연장과 하한액 수준도 낮추는 등 실업급여제도의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kjw@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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