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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균 칼럼] 제주항공 참사, 비극은 왜 반복되는가

공항·당국·기업 합작 人災
'세월호·이태원'때와 흡사
참사 기억해야 비극 멈춰

[정상균 칼럼] 제주항공 참사, 비극은 왜 반복되는가
정상균 논설위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참사 열흘째다. 항공사와 무안공항, 당국의 구조적 문제와 감독 부실이 만들어낸 인재(人災)라 볼 수밖에 없겠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기본부터 소홀했다. 항공안전 기초인 새떼 충돌 위험(버드 스트라이크)을 차단하는 조치가 부실했다. 이른 아침에 많이 착륙하는 동남아 국제노선이 취항했다면 동이 틀 무렵 활동하는 조류 특성상, 이 시간대 새떼 퇴치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했다. 철새 도래지와 인접한 무안공항은 환경영향평가 때마다 조류충돌 위험이 경고됐으나 줄곧 무시했다. 조류 퇴치 전담직원은 고작 4명, 조류 퇴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니 말이다.

둘째, 당국의 관리감독은 부실했다. 참사로 이어진 결정적 이유는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이다. 당국은 설치규정과 달리 단단한 구조물로 건설된 사실조차 몰랐다. 국토교통부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 타령'만 하고 있다. 공항 설계와 공사, 감리에 하자가 없었는지, 이를 허가한 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항공기 정비의 적정성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3·4분기 여객기 1대당 월평균 418시간을 운항했다. 국내 주요 6개 항공사 중에 최장이다. 빌린 비행기 1대당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이라지만 항공기를 혹사한 것이 아닌지, 정비가 규정에 맞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의심은 합리적이다. 제주항공은 "무리한 운항이 아니다"라며 정비를 정확하게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운항 횟수가 잦은 데 비해 매뉴얼과 다른 부족한 정비 시간, 잦은 기체 고장, 정비에 따른 운항 지연 시 정비사 책임 추궁 등 내부에서는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공유됐다고 한다. 당국이 "이 정도쯤은" 하며 알고도 관례적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셋째, 이해당사자의 유착 가능성이다. 무안공항은 지역 정치인들이 수요를 부풀려 밀어붙인 '정치 공항'이다. 새떼가 많은 해안 입지라 반대도 많았다. 그럼에도 지방공항 건설 광풍을 타고 지어졌고, 지난해 12월 활주로 확장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채 국제선 노선이 재취항했다. 국제선 관제 역량을 갖추었는지, 안전 인력·장비를 확충했는지, 운항상 위험요소가 없는지 등을 더 치밀하게 점검, 보완한 후 국제선 취항을 허가했어야 했다. 이 과정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허가 당국과 한국공항공사, 지방항공청, 지방정부, 지역사회 모두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2014년)는 화물적재량 초과와 평형수 기준 위반, 당국의 허술한 안전 감독과 이해당사자와의 유착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2022년)는 당국의 인파 경고 무시와 경찰 지휘체계 작동 불능, 늑장 조치가 원인이었다. 청주 지하차도 침수 참사(2023년)도 제방 부실 공사와 감독 소홀, 강물 범람 위험 신고 무시와 늑장 통제가 이유였다. 참사가 터지면 책임 있는 사람들은 보고서를 조작하며 "내 잘못이 아니다"라며 발뺌했다. 관료들은 규정집을 뒤지며 책임 추궁을 면할 궁리만 했다. 업자와 관료는 이해가 상충하는 전관예우의 유착 사슬에 젖어있었다. 사고를 낸 기업은 안전보다 돈벌이가 먼저였다. 집권세력은 눈물도 마르지 않은 참사를 서둘러 덮으려 했다. 그 틈에 조작과 음모, 가짜뉴스와 악랄한 댓글이 퍼져갔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와 소름 돋을 정도로 흡사하다.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심리학과 교수 데이비드 디스테노는 '사람들이 비극의 크기에 압도된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며 이를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게 만든다고 했다('사고는 없다'). 집단 트라우마를 마주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이렇다. 무능한 지도자의 '정치적 참사'에 최악의 항공 참사까지, 경험한 적 없는 공포와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참사는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정치와 이념이 개입하면 참사의 정확한 원인과 교훈을 후대에 남길 수 없다.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면 현세대가 외면하고 미래 세대가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참사 기억관' 조성을 제안한다.

논설위원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