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경찰청장(왼쪾)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출석해 있다. 2024.12.5/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오늘 밤 10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거야. 계엄군이 국회로 갈 테니까 경찰은 국회 통제 잘해."(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저녁 7시 20분. 경찰 서열 1위와 2위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 가옥(안가)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조지호 경찰청장(직무정지)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직위해제)에게 비상계엄을 예고했다.
잠시 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에게 A4 1장을 건넸다. 종이에는 '밤 10시 국회', '밤 11시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계엄군이 출동할 시간과 장소가 담겨 있었다. 김 전 장관은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군이 출동할 텐데 경찰에서 잘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가를 나온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윤 대통령의 당부를 따랐다. 그들은 국회의 출입을 통제하기로 협의한 후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반란군'이 될 미래를 예감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까.
그들의 마음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떳떳하지 못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계엄 이틀 뒤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조 청장은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김 서울청장은 "공수부대가 국회에 들어오는 걸 TV를 보고 알았다"고 증언했다.
아수라장 속 '포고령' 발표…경찰 수장은 '충실'밤 10시 20분 윤 대통령이 예고했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김 서울청장은 곧바로 6개 기동대를 국회 각 출입문에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안가를 나오자마자 준비했던 경찰력이었다.
국회의사당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 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계엄 선포 20분 후 경찰은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나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국회의원들까지 막는 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이 때가 밤 10시46분쯤이었다.
의원들은 신분증을 높이 들어 올리며 경찰에게 길을 터 달라고 요구했다. 이 때부터 밤 11시 37분 다시 국회가 전면 통제되기 전까지 의원 상당수가 국회로 들어갔고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박안수 계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출입 차단 요구를 받은 조 청장은 김 청장에게 "포고령에 따라 국회를 전면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김 서울청장은 조 청장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임 모 경찰청 경비국장은 조 청장에게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가 들어온다"며 "국회의원들까지 출입을 차단하는 건 헌법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본청에서 지침을 달라"고 보고했다.
"포고령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들이 다 체포된다. 지시대로 해라."조 청장은 현장에서 올라온 보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4만 경찰의 수장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충실할 뿐이었다.
기동대 지휘관의 무전기에선 명하나(지방청장을 지칭하는 내부 은어)의 지시가 흘러나왔다. "서울경찰청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포고령에 근거해서 일체 정치활동이 금지됩니다. 현 시간부로 국회의원 및 보좌관, 국회사무처 직원들도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하기 바랍니다."
그 사이 윤 대통령은 조 청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다.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라고 쏟아냈다.
조 청장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요청을 받고 경기남부경찰청장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선거연수원에 경찰을 보내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국회 통제를 위한 22개 기동대가 추가 배치됐다. 국회 앞에는 약 1740명의 경찰력이 배치돼 비상계엄 해제가 의결된 후에도 새벽 1시 45분까지 출입을 차단했다.
"이렇게 끝나게 돼서 죄송합니다"…경찰 서열 1·2위 구속 기소비상계엄이 해제되고 조 청장은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끝나게 돼서 죄송하다"며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수고했다"고 답했다. 계엄의 밤은 그렇게 끝났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지난 8일 나란히 구속 기소됐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이들의 혐의를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로 적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오는 6일 오전 10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재판을 통해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의 그날 밤 속마음이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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