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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상계엄 때 ‘항명’ 있었더라면


[기자수첩] 비상계엄 때 ‘항명’ 있었더라면
서민지 사회부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28분께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는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비현실감을 드러내기도, 누군가는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비상계엄은 비교적 오랜 기간 준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적어도 지난해 3월경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논의하고, 같은 해 11월경부터 실질적인 준비에 나선 것으로 파악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과 여러 차례 삼청동 안가와 대통령 관저, 국방부 장관 공관 등에서 만나 비상계엄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에는 군 지휘부에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 "(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 등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 하나 윤 대통령에게 "명령에 따르지 못하겠다"며 항명한 사람은 없었다. 김 전 장관의 경우 계엄 선포 직후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개최·주재해 자신이 전군을 지휘하겠다고 하면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고 했다.

반면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2023년 7월 19일 발생한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조사기록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항명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중앙지역군사법원은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군사법원법상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는 지체 없이 관련 기관에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재판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이첩을 중단하라고 한 것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상관의 지시가 부당하다면 불복종해도 처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관련 군 지휘부들은 '부당한 명령'이라는 점을 인식했음에도 항명하지 않았고, 결국 내란 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됐다. 이번 사태의 정점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은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부터 체포영장 집행까지 모두 불응하며 '버티기'를 이어가고 있다.

만일 수개월의 준비 과정부터 비상계엄 선포까지, 누군가의 '항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군 지휘부 중 부당한 명령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