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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심사숙고] 흔들리는 지정학 속에 저글링 이어가기

[이석우의 심사숙고] 흔들리는 지정학 속에 저글링 이어가기
이석우 대기자

중국 광둥성 선전의 비야디(BYD) 본사에 들어서면 머리 위로 달리는 무인자율주행 모노레일이 눈에 들어온다. '윈바(구름버스)'로 불리는 이 스카이셔틀은 축구장 95개 크기 230만㎡의 거대한 작업장과 7만여명의 직원을 24시간 연결하고 있었다.

배터리와 자율주행 기술로 달리는 머리 위의 셔틀. 미래 사업 하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 중국 비야디 선전 본사를 찾았을 때였다. 휴대폰 배터리를 모토로라 등에 납품하던 하청업체가 30년 만에 세계 최대 신에너지자동차회사(NEV)이자 전기전자 영역의 '토털 솔루션' 업체가 돼 있었다.

전시관의 '특허의 벽'과 '장인(기술자)의 벽'은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치열함을 드러냈다. '기술을 왕으로 삼고, 혁신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글자판과 함께 특허증서 수백 건이 붙어 있는 '특허의 벽'. 개발에 공헌한 엔지니어 사진이 가득 채워져 있는 '장인의 벽'에는 "끊임없는 완벽함의 추구"라는 뜻의 '정익구정'이라는 표어가 쓰여 있다. 연구인력 10만명이 11개 연구소에서 씨름 중인 블레이드배터리·셀투바디(CTB)·양극성트랜지스터(IGBT) 기술들은 100여개 브랜드 차량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기술 중시는 글로벌 특허 취득 1만3000여건 등 6만건 넘는 보유 특허로 나타났다.

"차량 모터와 배터리, 전자제어장치를 함께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왕촨푸 회장의 자부심에서 보듯, 핵심 부품의 수직계열화도 완성돼 있다. "전파 간섭·소음도·충돌 등 3대 성능실험실을 정부 지원 아래 2013년부터 운영해 왔다"는 것도 중국의 산업정책이 얼마나 정교하고 일관되게 기업을 도와왔는지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창립 30주년에 즈음해 1000만대 생산을 달성한 비야디는 2024년 한 해 EV 판매만 176만대로, 테슬라를 코앞까지 추격했다. EV 판매가 주춤하자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V) 독자 기술('DM-i')로 항속거리를 2100㎞까지 끌어올리며 주행거리에 불만이던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2019년 46만대이던 비야디 NEV 매출은 2023년 325만대, 지난해 전년 대비 42% 늘어난 427만2145대를 기록했다. 2020년 23% 성장을 비롯해 2021년 38%, 2022년 96%, 2023년 42% 등 가파른 성장세는 2025년 500만대 판매 달성도 낙관하게 하고 있다.

비야디 등 중국 기업이 세계 10대 EV기업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도 부쩍 강해진 중국의 산업경쟁력을 보여준다. 1998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1.4%에 불과했던 중국 점유율은 2023년 27배 커진 38.4%가 됐다. 중국산 NEV를 대표하는 비야디는 중국 산업생산력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NEV와 태양광, 배터리 등 3대 전략품목에서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한 중국 당국은 오는 3월 전인대에서 예정된 새로운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쉼없이 달려온 '중국제조 2025'의 초점은 다음 단계인 수소 및 양자산업, 인공지능(AI)으로 옮겨졌다. '높은 울타리'를 친 구미의 견제에도 공급망과 생태계를 확보한 중국의 미래 먹거리를 향한 행보는 더 빨라지고 있다. 새 목표를 향한 중국의 총력전은 수요 부족이란 국내외적 불균형 속에서도 멈춤이 없다.

'흔들리는 지정학' 속에도 2024년 중국의 수출은 7.1% 늘며 25조5000억위안(5101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무역흑자도 7조600억위안(약 1412조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다.
'트럼프 2기' 산업기술력의 역전현상 속에서 우리보다 11배 큰 경제체의 '첨단 굴기'는 성장한계 돌파를 모색하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를 줬다. 공중에서 여러 개 공을 동시에 돌리는 저글링처럼 미국·중국이란 '기회의 공'이 떨어져 누락되지 않도록 유지해 나가는 저글러들의 솜씨와 활약이 아쉽고 소중한 때다. 흔들리는 지정학 속에서도 저글링은 이어가야 한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